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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인간의 양육에 관하여

어린 뇌는 스스로 세계와 연결한다

신생 인간보다 더 유능한 동물이 많다. 가터뱀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혼자서 미끄러져 갈 수 있고, 말도 태어난 직후 걸을 수 있으며, 침팬지는 매달릴 수 있지만, 갓 태어난 인간 아기는 자기 팔 다리도 제어하지 못한다.
인간의 뇌는 약 25년에 걸쳐 주요 배선이 마무리되고 나서야 온전한 구조와 기능을 가진 성인의 뇌가 된다.
어떤 원인을 유전자나 환경 중 한쪽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왜냐면 이 두 가지는 격렬하게 탱고를 추는 연인과 같기 때문이다. 이 둘은 서로 너무 깊게 얽혀 있어서 본성이나 양육 같은 별개의 이름으로 불러봐야 소용이 없다.
아기의 배선 지침은 물리적 환경 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 양육자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다양한 사회적 행위들이 아기의 뇌를 필연적이고도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조각해나간다. 유전자는 아기의 뇌 배선을 구축하는데 핵심 역할을 하며, 신생아의 뇌 배선이 아기가 속한 문화적 맥락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다.
정보가 외부세계에서 신생아의 뇌로 이동할 때 일부 신경세포는 그 밖의 다른 신경세포보다 더 빈번하게 함께 발화해 우리가 가소성이라고 부르는 점진적인 뇌 변화를 일으킨다. 이러한 변화는 세부조정(tuning)과 가지치기(pruning)라는 두 가지 프로세스를 통해 아기의 두뇌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세부조정이란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 특히 자주 사용하거나 신체자원(수분, 염분, 포도당 등)의 예산을 책정하는데 중요한 연결을 강화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신경세포를 작은 나무에 비유해보면, 세부조정이란 가지 모양의 수상돌기가 더 무성한 덤불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전선 피복과 같은 역할을 하는 지방질의 ‘나무껍질’인 미엘린(myelin)이 줄기 모양의 축삭을 더 두껍게 둘러싸서 신호가 더 빨리 전달되게끔 한다는 뜻이다.
세부조정은 잘된 연결은 그러지 못한 연결보다 정보를 전달하고 처리하는데 효율적이므로 앞으로 재사용된 가능성이 크다. 이는 뇌가 세부조정이 잘된 연결을 포함하는 특정 신경 패턴을 재현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뜻이다. 신경과학자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함께 발화하는 신경세포가 함께 연결된다’
(신기한 것은 뇌는 잘 된 연결과 못 된 연결을 스스로 어떻게 아는냐는 것. 개별 뉴런이 자신이 다른 어떤 뉴런과 연결되는게 더 좋은지를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것이다. 개별 뉴런 입장에서는 자신과 직접 연결된 뉴런에 대해서만 알고 있을텐데)
한편 덜 사용되는 연결은 약해지고 사라진다. 이것은 ‘쓰지 않으면 잃어버린다’에 해당하는 신경 가지치기 프로세스다.
작은 인간은 궁극적으로 사용할 것보다 더 많은 연결을 지니고 태어나기 때문에 가지치기는 두뇌가 발달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인간 배아는 성인의 뇌에 필요한 신경세포의 두 배를 생성하므로 아기의 신경세포들은 성인 뇌에 있는 신경세포들보다 훨씬 더 무성하다.
처음에는 사용하지 않는 연결들도 도움이 된다. 뇌가 다양한 환경에 맞춰 세부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사용하지 않는 연결은 신진대사 측면에서 부담이 된다. 가치 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제공하지 않는 연결을 유지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니까.
그래도 좋은 소식이라면 이렇게 불필요한 연결들을 정리하면 학습을 더 많이 할 공간, 다시 말해 더 유용한 연결들을 조정할 여지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세부조정과 가지치기는 아기 몸이 성장하고 활동량이 많아짐에 따라 그리고 아기 바깥에 있는 물리적, 사회적 세계에 의해 지속적이면서 종종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이 두 프로세스는 평생에 걸쳐 이루어진다.
무성한 나뭇가지 같은 수상돌기가 새싹을 계속 돋아내면 뇌는 그것들을 세부조정하고 가지치기 한다. 세부조정되지 않은 새싹들은 며칠 내에 사라진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양육자가 곁에서 맴돌면서 모든 욕구를 채워주는 것보다 스스로 학습할 기회를 만들어줄 때 자신의 신체예산을 더 잘 관리한다. 아이를 키울 때 커다란 어려움은 언제 들어가야 하고 언제 뒤로 물러나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사람들의 대화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누군가가 당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즉시 그쪽으로 주의를 기울인 경험이 있지 않은가? 과학자들은 이것을 ‘칵테일파티 효과’라고 부른다.
성인의 뇌는 어둠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처럼 한 가지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일을 쉽게 해낸다. 이것은 당신의 뇌 네트워크에 특정 세부사항에 초점을 맞추고 관련 없는 세부사항은 무시하는 것을 주된 업무로 하는 소규모 신경세포 무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지속해서 그리고 자동으로 ‘주의’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만, 우리는 대개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관심공유는 아이에게 환경의 어떤 부분이 중요하고 어떤 부분은 중요하지 않은지를 조금씩 가르친다. 그러면 아이의 뇌는 신체예산과 관련이 있는 것과 무시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자기 환경을 구성해갈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 환경을 ‘적소(niche)’라고 부른다.
모든 동물에게는 자신의 적소가 있다. 세상을 감지하고 쓸모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신체예산을 조절하면서 자신의 적소를 만들어간다.
성인 인간은 거대한 적소를 갖고 있다. 아마도 생물들 중에서 가장 클 것이다. 당신의 적소는 인접한 주변 환경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과거-현재-미래에 일어나는 일들까지 포함한다.
여러 달에 걸쳐 양육자와 함께 관심공유를 연습하고 나면 아기는 양육자에게서 관심공유를 이끌어내는 법을 배운다. 이제 아기는 어떤 것이 자기 적소에 있는지 아닌지, 그리고 그것이 자기 신체예산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묻는 뜻에서 양육자를 바라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아기는 중요한 일에 더욱 효과적으로 주의를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
과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가지치기가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쉽게 언어를 배우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입말들은 각각 다른 소리 세트를 사용한다. 예컨대 그리스어와 에스파냐어에는 모음이 적은 반면 덴마크어에는 20개가 넘는 모음이 있다. 당신이 아기였을 때 사람들이 당신과여러 가지 언어로 상호작용을 했다면, 당신의 뇌는 아마도 그 언어들의 소리를 듣고 구분하기 위해 세부조정하고 가지치기 했을 것이다. 반면 어렸을 때 한 가지 언어만 들었다면 모국어 외의 소리를 듣고 구별하는 능력을 새로 배우기가 쉽지 않다.
얼굴을 알아보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게 작동한다. 아기의 뇌는 얼굴의 미세한 차이를 감지해 서로를 구별할 수 있도록 세부조정되고 가지치기 되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사람들은 같은 민족 가까이에 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아기의 뇌가 다양한 얼굴 특징을 감지하도록 세부조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과학자들은 이것이 우리가 타민족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거나 구별하기가 더 어려운 한 가지 이유라고 생각한다.
언어를 듣고 얼굴을 보는 것과 같은 사례는 단일 감각에 초점을 맞추지만 당신은 다중 감각의 세계에 살고 있다. 예컨대 우리가 누군가와 키스를 하면 우리는 얼굴의 모습, 숨 쉬는 소리, 감미로운 입술의 느낌과 맛, 향기, 그리고 자기 심장 뛰는 소리까지 결합된 통합적 경험에 둘러싸인다. 우리 뇌는 이러한 감각들을 하나의 전체로 모아낸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프로세스를 ‘감각통합(sensory integration)’이라고 부른다.
감각통합은 아기가 성장함에 따라 세부조정되고 가지치기된다. 신생아는 얼굴이 무엇인지 배우지 않았고 시각계가 완전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엄마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엄마의 목소리는 조금 알고 있으며 모유 냄새를 맡을 수도 있다. 엄마의 배에 갓난아기를 얹으면 향기를 따라 엄마의 가슴까지 기어오를 것이다. 아기는 곧 모든 감각을 다양하게 조합해서 엄마를 인식하는 법을 배운다. 아기의 작은 뇌는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미각의 각 패턴과 자신의 체내 감각들을 흡수하고 그 의미에 대해 배운다.
이렇게 해서 자신의 신체예산을 조절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감각통합을 통해 아기는 처음으로 신뢰감을 느끼며 이는 애착(attachment)을 위한 신경적 토대의 일부를 이룬다.
그러나 이러한 처리 방식에는 위험이 따른다. 아기 뇌가 정상적으로 발달하려면 사회적 세계가 필요하다. 앞서 배웠듯 망막으로 쳐들어오는 빛의 광자와 같은 특정한 물리적 입력자극(physical input)이 없다면 아기의 뇌는 정상적인 시력을 발달시키지 못할 것이다.
아기들에게는 또한 주의를 끌고 말하고 노래해주며, 중요한 순간에 자신을 안아주는 다른 인간으로부터의 사회적 입력자극(social input)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요구사항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상황이 엄청나게 잘못될 수 있다.
(1960년대 루마니아의 공산당 정부 예 생략)
이러한 사회적 방치의 결과로 루마니아 고아들은 지적 장애를 입은채 자라났다. 그들은 언어를 배우는데 문제가 있었고, 집중하거나 주의가 흐트러지는 것을 제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것은 누구도 그들과 관심을 공유하지 않아 뇌가 효과적인 스포트라이트를 위한 배선을 발달시키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또한 자신을 통제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아이들은 정신적, 행동적 문제와 더불어 신체의 발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것은 아마도 신체예산을 제대로 분배하도록 도와주는 양육자 없이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그들의 뇌가 신체예산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린아이의 뇌가 환경에 연결되었는데 그 환경에 건강한 신체예산을 위한 핵심 요소가 없으면 중요한 배선이 가지치기 되어 사라질 수 있다.
이러한 후유증은 과학자들이 사회적 입력자극이 심하게 결핍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에게서 확인한 것과 일치한다. 이 아이들의 뇌는 평균보다 작게 발달한다. 주요 뇌 영역도 더 작으며 대뇌피질의 중요한 영역들에서 연결이 더 적게 나타난다. 만약 이 아이들을 생후 몇 년 이내에 보통의 위탁 가정으로 옮긴다면 이러한 영향 중 일부는 되돌릴 수 있다.
하지만 고아원이든 난민캠프든 이민자 구금 시설이든 상관없이 섬세하게 돌보는 일관된 양육자가 없는 기관에서 자란 아이들에게는 유사한 위험이 얼어날 수 있다.
(이것 때문에 국가가 아이를 기르는 정책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아이를 기르는 것은 대단히 수고로운 일인데, 자기 자식이니까 그 수고를 감수하고 아이를 기르는 것. 남의 아이를 기르는데 그런 수고를 감수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 맥락을 좀 더 확장하면 상속까지 이을 수 있다. 상속이 안 되는 사회에서는 굳이 자녀 세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행동을 할 동인이 없다)
아이들이 지속해서 방치되면 병에 걸릴 가능성도 매우 커진다. 명확히 해두자면 나는 아기들을 스트레스가 없는 세상에서 자라게 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아기들의 뇌와 몸이 고장나버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지원 없이 ‘지속해서’ 방치하는 것은 거의 언제나 어린 뇌에게 해롭다고 말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한 과학적 증거는 명확하다.
빈곤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의 뇌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들이 보인다. 연구에 따르면 생애 초기에 장기간 빈곤에 노출되는 것은 뇌 발달에 좋지 않다. 과학자들은 지금도 빈곤이 뇌 발달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하고 있다. 어떤 아이들은 역경과 빈곤의 교묘한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연스럽게 회복될 만큼 운이 좋을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어린 뇌에게 역경과 빈곤이란 극복하기 힘든 고통이다.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진화생물학과 인류학의 증거들을 근거로 나는 다음과 같이 추측한다. 이런 방식은 우리의 문화적, 사회적 지식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효율적으로 흐르도록 돕는다. 아이의 뇌 하나하나는 그 뇌가 속한 특정 환경에 최적화 된다.
양육자들은 아기의 신체적, 사횢거 적소를 큐레이션해나가고 아기의 뇌는 그 적소를 학습한다. 아기가 자라 성인이 되면 말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문화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고, 그들의 뇌를 차례로 연결함으로써 그 적소를 영구화한다.
문화 유전(cultural inheritance)이라고 불리는 이 프로세스는 효율적이며 비용이 적게 든다. 진화가 우리의 모든 배선 지침을 유전자에 부호화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진화는 인간들을 포함해 우리 주변 세계에 대한 업무의 상당 부분을 내려 놓을 수 있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우리 문화의 지식을 자손들에게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