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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서양철학사/ 공리주의자들

영국의 전문 철학자들은 칸트에서 니체에 이르는 시기 내내 독일 철학자들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벤담과 그의 학파는 철학을 형성한 주된 요점을 로크, 하틀리, 엘베시우스에게서 도출했다. 그들은 철학적인 측면보다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영국 급진주의의 지도자이자,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회주의 학설의 등장을 준비한 철학자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벤담의 철학은 두 가지 원리에 근거하는데, 하나는 ‘연합 원리’이고 다른 하나는 ‘최대 행복 원리’이다.
벤담은 선이란 쾌락이거나 행복이고 악은 고통이라고 주장했는데, 쾌락과 행복을 동의어로 사용했다.
만약 어떤 사태가 고통보다 쾌락의 양을 더 많이 포함하거나 쾌락보다 고통의 양을 더 적게 포함하면, 그 사태는 다른 사태보다 더 선하다. 가능한 모든 사태들 가운데 최선은 쾌락을 가장 많이 포함한 사태이다.
(이러면 지역 최적점에 빠질 수가 있다.)
벤담은 선이 일반의 행복일 뿐만 아니라 개인은 언제나 각자 믿는 행복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입법자는 공공 이익과 사적 이익의 조화를 산출하기 위해 일한다.
내가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공공 이익에 부합하는데, 유효한 형법이 제정되지 않은 곳에서라면 이러한 행도잉 나의 이익에는 부합하지 않게 딘다. 따라서 형법은 개인의 이익을 공동체의 이익과 공존하게 만든느 방법이고, 그 것이 바로 법의 정당성을 보증해준다.
범죄자를 증오해서가 아니라 범죄를 막기 위해 인간은 처벌을 받게 된다. 가혹한 처벌보다 확실한 처벌이 중요하다.
벤담에 따르면 민법의 목표는 네 가지로서 생존, 부, 안전, 평등이다.
그가 자유를 언급하지 않은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사실 그는 자유에는 거의 마음을 쓰지 않았다.
벤담이 점차 급진주의로 나아가게 된 근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쾌락과 고통의 계산에서 연역적으로 추론되는 평등의 신념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일을 그가 이해한 이성의 중재에 맡기려는 불굴의 결심이다.
제임스 밀은 벤담처럼 쾌락이 유일한 선이고 고통은 유일한 악이라 보았다. 그러나 그는 에피쿠로스처럼 온건한 쾌락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며, 지적인 즐거움이 최선의 덕이고 절제는 주된 덕이라고 생각 했다.
제임스 밀은 정치는 이성으로 제어하고 사람들의 의견은 증거의 양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논쟁을 하면서 대립하는 양측이 같은 기량을 나타낸다면, 지지하는 수가 더 많은 측이 옳다고 판단해야 도덕적으로 확실하다는 말이다.
그가 제시한 사고방식은 천성적으로 정서가 부족했기 때문에 창조력이 결여된 반면 근면, 공평함, 합리성 같은 장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19세기 중반기 내내 벤담주의자들이 영국의 법 제정과 정책에 미친 영향력은 정서적인 면에 전혀 호소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로 두드러졌다.
벤담은 사회 일반의 행복이 최고선(summum bonum) 이라는 견해를 지지하는 다양한 논증을 내놓았다.
그는 마르크르슬 예견하는 듯 정치적 궤변에 관한 논문에서 감상적이고 금욕적인 도덕규범은 지배 계급의 이익에 기여하며 귀족정치 체제의 구시대적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희생의 도덕을 가르치는 자는 오류에 빠진 희생자로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기를 발나다고 말한다. 도덕 질서란 다양한 이익들이 평형을 이룰 때 생겨난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배자 집단은 지배 계급의 이익과 피지배 계급의 이익이 이미 일치한 듯이 가장하지만, 개혁가들은 두 계급 간의 이익이 아직 일치되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일치시키려 노력한다.
벤담은 공리 원리(Principle of utility)만이 도덕과 법 제정의 규준을 제공할 수 있으며, 사회과학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리주의에 대한 러셀의 비판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