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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서양철학사/ 12세기

12세기의 4가지 양상은 다음과 같다.
황제권과 교황 체제의 계속되는 갈등
롬바르디아 도시들의 발흥
십자군
스콜라 철학의 설장
(중간 중간 역사와 인물의 배경 이야기는 생략)
교황과 황제 사이에 벌어진 투쟁의 최종 결과는 하인리히 3세에게 굴복했던 교황이 황제와 필적하는 권력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교황은 교회 내에서 완전한 주권자가 되어 교황 특사들을 파견해 지배력을 과시했다.
이와 같이 교황 권력이 증대함에 따라 주교들의 지위는 점점 낮아졌다.
교황 선출은 세속 군주의 지배에서 자유로워졌고, 성직자들은 대체로 교회 개혁 이전보다 도덕성을 갖추게 되었다.
좁은 의미의 스콜라 철학은 12세기에 시작된다. 스콜라 철학은 철학 학파로서 명확한 특징을 나타낸다.
첫째, 스콜라 철학의 저자들은 신앙에 따르는 범위 내에 갇혀 있다.
둘째, 정통 신앙의 한계 내에서 12세기를 거쳐 13세기에 이르는 동안 점차 충분히 알려지게 된 아리스토텔레스를 최고 권위로 받아 들인다. 플라톤은 더는 최고 권위로 군림하지 못하게 된다.
셋째, 변증법과 삼단논법의 추리에 대한 믿음이 대단히 확고했다. 스콜라 철학자들의 일반적 기질은 신비주의에 기울기 보다는 엄밀하고 논쟁을 좋아했다.
넷째, 보편자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견해가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서 표면화 되었다.
(이하 다양한 사람들과 설명 생략)
12세기에 번역가들이 점차 늘면서 서방의 학생들이 그리스 서적을 더 많이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번역서를 낸 주요 공급원 세 곳이 콘스탄티노플, 팔레르모, 톨레도였다.
이 가운데 톨레도는 가장 중요한 곳이었는데, 그리스어를 직접 번역하지 않고, 아랍어로 번역된 책을 중역하는 일이 흔했다.
12세기 중엽 톨레도의 대주교 레몽은 번역가 양성 대학을 설립했고, 대학의 업적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