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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서양철학사/ 스토아 철학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인 제논은 유물론자로서 주로 키니코스 학파의 철학과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을 결합한 학설을 내놓았다.
그러나 스토아 학파는 점차 플라톤 철학과 혼합되면서 유물론을 포기하고 종국에는 유물론의 흔적이 거의 사라져 조금 밖에 남지 않았다.
스토아 철학은 어떤 학파의 철학보다 그리스 색채가 적게 나타난다.
초기 스토아 철학자들은 대부분 시리아 사람들이고, 후기 스토아 철학자들은 대부분 로마 사람들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스토아 학파의 역사가 이어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으뜸가는 성인이었다.
재판을 받을 때의 당당한 태도, 탈출 권고를 거절한 일, 죽음과 마주하여 보여준 침착한 태도, 불의를 행하는 자가 불의를 당하는 자보다 더 자신을 해치게 된다는 주장은 모두 스토아 학파의 철학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러나 스토아 학파는 플라톤의 이상 이론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스토아 철학자들은 대부분 플라톤의 영혼 불멸 논증을 거부했다.
다만 후기 스토아 철학자들이 영혼을 비물질적인 존재로 생각한 점에서 플라톤을 추종했을 뿐, 초기 스토아 철학자들은 영혼이 물질적인 불로 이루어져 있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견해에 동조했다.
제논은 형이상학의 미묘하고 세밀한 요소를 참아낼 끈기가 없었다. 그는 덕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여 자연학과 형이상학의 가치도 덕에 기여할 경우에만 인정했다.
그는 상식을 수단으로 삼아 당시의 형이상학적 경향에 대항해 싸우려 했는데, 그리스에서 상식은 유물론을 의미했다. 그는 감각 능력의 신뢰성에 흠집을 내는 의심들을 성가시고 귀찮아 정반대 학설을 극단까지 밀고 나갔다.
스토아 학파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변치 않은 주요 학설은 우주에 관한 결정론과 인간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
제논은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자연의 경로는 자연 법칙에 따라 고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대부분 스토아 철학자들에 따르면 우주의 대화재는 그리스도교 교리에 나타나는 세상의 멸망과 같은 최후의 종말이 아니라 한 주기의 마지막 단계일 따름이다. 전체 과정은 주기적으로 끝없이 되풀이 된다.
스토아 학파에서 자연의 행로는 18세기 신학에서 주장하듯이 자비로운 섭리라 부르는 입법자가 정해 놓은 것이다.
아주 사소한 세부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자연을 수단으로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러한 목적들은 신이나 악마와 관련되지 않는 한, 인간의 삶 속에서 찾아내야 한다.
신은 세계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신은 세계영혼(soul of the world)이기에 우리 각자가 신성한 불의 일부를 품고 있다.
만물은 자연이라 부르는 단 한 체계를 이루는 부분들이다.
개인의 삶은 자연과 조화를 이룰 때 선한 삶이 된다.
어떤 점에서는 어느 삶이나 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또 다른 점에서 인간의 삶은 개인의 의지가 자연의 목적으로 향하는 경우에만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덕은 자연과 일치하는 의지 속에 존재한다.
개인의 삶 속에서 유일한 선은 덕이다. 건강, 행복, 재산 같은 것들은 결코 선하지 않다.
스토아 학파의 덕 개념에 포함된 냉담의 요소가 어울린다. 나쁜 감정 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을 비난한다. 현자는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다.
아내와 자식이 죽더라도 현자는 처자의 죽음이 자신의 덕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다지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스토아 학파는 보편적 사랑을 원리로서 가르쳤다.
(이후 스토아 철학의 계승자들 내용 생략)
스토아 철학의 2가지 모순
자유의지에 대한 모순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앞선 원인들의 결과이고, 개인의 의지는 완벽하게 자율성을 갖는다는 모순이 존재
의지는 자율성을 지니며 덕을 갖춘 의미만이 선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남에게 좋은 일을 하지도 못하고 남을 해치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자비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인식론과 자연법, 자연권 학설에 영향을 미침
스토아 철학자들은 플라톤을 무시하고 인식론에 지각을 받아 들임. 그들은 감각의 속임수를 실제로 거짓 판단이라고 주장하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피할 수 있다고 주장
스토아 철학자들은 지성의 빛에 따라 명백한, 만인이 인정하는 어떤 원리들이 존재한다고 주장.
이 원리들은 연역법의 기초 명제로 쓰일 가능성이 있었다.
생득 관념들도 비슷하게 정의의 출발점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관점을 중세 내내 받아들였고 심지어 데카르트 조차 받아들였다.
16-18세기 자연권 학설은 스토아 학파의 학설을 부활시킨 결과였으나 중요한 수정을 거침. 스토아 철학자들이 자연법과 만민법을 구분.
자연법은 일반적인 모든 지식의 기초를 이루는 제일 원리들에서 도출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연에 따라 만인이 동등하다고 주장.
17세기 스토아 학파의 자연법 학설과 자연권 학설은 그리스도교의 옷으로 갈아입고 실천적 힘을 얻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