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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서양철학사/ 칸트

18세기 철학은 로크, 버클리, 흄이 대표한 영국 경험론이 지배했다.
이들의 기질은 사회적인 경향을 띤 반면 이론철학은 주관주의로 흘러갔다. 이는 고대 말기에 이미 존재했던 전혀 새롭지 않은 경향으로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에 의해 강조되었다가 근대에 이르러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라는 명제로 다시 살아나서 라이프니츠의 창 없는 단자에 이른 순간 정점에 다다랐다.
로크는 이론에 일관되지 않은 면이 있다. 그는 우리가 실재하는 존재에 대한 세 가지의 지식, 즉 우리 자신에 대한 직관적 지식, 신에 대한 논증적 지식, 감각에 주어진 대상들에 대한 감각적 지식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단순 관념은 ‘자연적인 방식으로 마음에 작용한 대상들의 산물’이다.
버클리는 로크의 일관되지 않은 면의 끝을 보여준 중요한 단계를 밟아 나갔다. 그에게는 마음과 관념들만 존재하므로 물리적인 외부 세계는 철폐된다.
그래도 그는 로크에게서 물려받은 인식론적 원리의 귀결을 넙부 파악하는데는 실패했다.
흄은 이론의 일관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갔던 반면, 실제 삶을 이론과 일치시키려는 충동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흄은 자아를 부정하고 귀납법과 인과성에 의문을 던졌다.
로크와 마찬가지로 흄은 선행된 인상이 없는 단순 관념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의심할 것도 없이 ‘인상’을 마음 밖에 있는 것에 의해 직접적으로 야기된 마음의 상태로 상상했다.
흄은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경험론이 논리적 결론에 이르게 되면 아무도 스스로 과학 전체 영역에서 합리적인 믿음과 경솔한 믿음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으며, 양자 간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독일에서는 흄의 불가지론에 저항항 반동이 일어났는데, 루소의 저항보다 훨씬 더 의미심장하고 치밀한 형태로 나타났다.
칸트, 피히테, 헤겔은 새로운 철학을 발전시켰는데, 18세기 후반의 사회 전복을 꾀한 파괴적인 학설에서 지식과 덕을 둘 다 안전하게 지키려 했다.
독일 관념론은 전반적으로 낭만주의 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했다.
일반적으로 칸트는 근대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받아들여진다.
칸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은 <순수이성비판>인데 이 책의 목적은 우리의 지식이 경험을 초월할 수는 없지만 일부는 선험적이어서 경험에서 도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 지식의 선험적인 부분은 논리 뿐만 아니라 논리의 한계 내의 귀납법에 의해 도출되거나 논리적으로 연역될 수 없는 것도 많이 포함한다.
그는 라이프니츠가 혼동한 두 가지 구분을 명확히 제시하는데, 하나는 ‘분석’ 명제와 ‘종합’ 명제의 구분이고 다른 하나는 ‘선험’ 명제와 ‘경험’ 명제의 구분이다.
‘분석’ 명제는 술어가 주어의 일부인 명제로서 ‘이등변 삼각형은 삼각형이다’ 같은 명제가 예이다. 이러한 명제들은 모순율에서 도출된다.
‘종합’ 명제는 분석적이지 않은 명제로 오직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명제는 모두 종합 명제이다. ‘화요일은 습도가 높은 날이었다’ 가 그 예.
칸트는 라이프니츠나 이전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모든 종합 명제가 오직 경험을 통해 알려진다는 반대 명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경험’ 명제는 감각 지각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명제로서 우리 자신의 감각 지각이나 다른 사람의 감각 지각에 의한 증거를 바탕으로 수용한다.
반면 ‘선험’ 명제는 경험에 의해 도출될 수 있지만, 인식될 때 경험과는 다른 기초를 가진다고 알려진 명제이다.
구슬 두 개와 다른 두 개를 합치면 네 개가 된다는 사실을 경험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지만, ‘2 더하기 2는 4이다’ 라는 일반 명제를 파악했을 때 더는 사례에 의한 확증은 필요 없어진다. 이러한 수학 명제는 귀납법이 결코 일반 법칙에 부여할 수 없는 확실성을 가진다. 순수 수학의 명제들은 전부 다 이러한 점에서 선험적 명제들이다.
(나는 선험이 경험과 대비된다고 해서 타고난 지식을 의미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과는 전혀 다르네)
흄은 인과 법칙이 분석 명제의 특징을 갖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했으며, 우리가 인과 법칙의 참을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도 추론했다. 칸트는 인과 법칙이 종합 명제의 특징을 가진다는 견해를 수용했는데도, 선험적으로(a priori) 인식된다고 주장했다.
칸트에 따르면 외부 세계는 단지 감각의 재료를 제공하는 원인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정신 능력은 이러한 재료를 시간과 공간 속에 질서정연하게 배열하며, 우리가 경헝믈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들을 제공한다.
우리 감각의 원인들인 사물들 자체는 인식될 수 없다. 사물들 자체는 시간이나 공간 속에 존재하지 않아서 실체들이 아니고, 칸트가 ‘범주’라고 부른 일반 개념으로도 기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은 주관적이며 우리의 지각 능력의 일부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가 경험한 것은 무엇이든 기하학과 시간 과학으로 다룰 수 있는 특징들을 드러낼 것이다.
칸트의 말에 따르면 공간과 시간은 개념이 아니라 ‘직관’ 형식이다.
(이하 설명 생략)
<도덕 형이상학>에 진술된 칸트의 윤리 체계는 중요한 역사적 가치와 의의를 가진다. 이 책에는 ‘정언 명령’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모든 도덕 개념은 완전히 선험적인 이성 속에 그 자리와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도덕적 가치는 인간이 의무감으로 행동할 경우에만 있을 수 있다.
도덕적 행동은 의무가 규정했을 수도 있는 행동이어야 한다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자기 이익을 위해 정직하게 행동한 사람에게 덕이 있다고 하지 않는다. 도덕성의 본질은 법칙의 개념에서 도출되어야 한다.
의지를 강제하는 한에서 객관적인 원칙의 이념을 이성의 명령이라 하며, 명령의 형식을 명법(imperative)이라 부른다.
명령에는 가언 명령과 정언 명령이 있다. 가언 명령은 ‘네가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고 싶다면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이고, 정언 명령은 어떤 행위가 목적에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필연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정언 명령은 종합적이면서 선험적인 특징을 가진다.
(이하 설명 생략)
(칸트의 공간, 시간 이론에 대한 러셀의 비판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