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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서양철학사/ 19세기 사상의 흐름

19세기 지성인들의 삶은 이전 어느 시대보다 복잡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다.
관계를 주고 받는 구역이 넓어져 미국과 러시아가 주도권을 쥐게 되었으며, 고대나 현대의 인도 철학이 더 잘 알려졌다.
과학이 지리학, 생물학, 유기 화학 분야에서 새로운 업적을 달성했다.
기계에 의한 생산이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으면서, 물리적 환경에 관계하는 새로운 힘의 개념을 제시했다.
사상, 정치학, 경제학 분야의 전통적인 체계에 반하는 철학적인 면과 정치적인 면 둘 다에 걸친 의미 심장한 반항은 여러 종류의 신앙과 제도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반항은 두 가지 다른 형태로 등장했는데, 하나는 낭만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합리주의이다.
낭만주의적 반항은 바이런, 쇼펜하우어, 니체를 거쳐 무솔리니와 히틀러에게 이어졌다.
합리주의적 반항은 프랑스 혁명기의 프랑스 계몽철학자들과 더불어 시작되어 영국의 철학적 급진파에게 전해지고 그 다음에 마르크스 사상 속에서 더욱 심화되고 난 뒤 소련에 유포되었다.
(두 사조의 역사적 흐름 생략)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철학자들은 고전, 문학, 정치 측면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러나 철학적인 견해를 등장 시킨 두 가지 다른 원천이 있는데, 과학과 기계 생산이다.
둘째 원천은 마르크스와 더불어 이론의 형성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면서 이후로 점점 더 중요한 의의를 갖게 되었다.
첫째 원천은 17세기 이래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지만, 19세기에 새로운 외형을 갖추었다.
다윈은 갈릴레오와 뉴턴이 했던 일을 19세기에 이루어냈다.
다윈 이론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한 부분은 진화론으로서 여러 형태의 생물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점진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 학설은 새로운 견해는 아니었으나 –고대 아낙시만드로스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라마르크와 다윈 할아버지인 에라스무스에 의해 주장되었다– 다윈은 어마어마한 야으이 증거를 제시했다.
다윈의 둘째 부분은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이었다. 이 부분에 해당하는 다윈의 이론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며,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여러가지 중요한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 했다.
역사적 관점에서 흥미로운 점은 다윈이 철학적 급진파의 특징이었던 경제학을 생명체 전반에 걸쳐 확장했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진화의 동기를 부여하는 힘은 자유로운 경쟁의 세계를 지배하는 일종의 생물학적 경제학이다.
(이하 진화론에 대한 러셀의 견해 생략)
생물학이 위세를 떨치게 되자 과학의 영향을 받은 사상가들은 기계적인 범주보다는 오히려 생물학의 범주를 세계에 적용하려 들었다.
만물이 진화한다고 가정했기 때문에 우주에 내재한 목표를 상상하기는 쉬웠다. 다윈의 이론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진화가 우주의 목적에 대한 믿음이 정당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유기체 개념은 자연 법칙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동시에 철학적으로 설명하는 열쇠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18세기 원자적 사고방식은 시대에 뒤쳐진 유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관점음 마침내 이론 물리학에도 영향을 주었다.
정치학에서는 자연스럽게 개인에 대립하는 공동체에 강조점을 두는 쪽으로 이끌어갔다. 이러한 경향은 점차 증대하는 국가 권력과 조화를 이루었으며, 또 개인들이 아닌 국가들에 적용된 다윈의 적자생존 학설에 호소할 수 있는 국가주의와도 잘 어울렸다.
생물학이 기계론적 세계관에 맞서 싸우는 동안 현대적인 경제 기술은 반대 결과를 초래했다.
19세기 말엽까지 과학 기술은 과학이론에 대립된 것으로서 여론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산업사회가 출현하게 되면서 기술이 인간의 사유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이하 설명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