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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성장: 환상과 현실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들 사이의 격차는 좁혀지고 있지만, 이는 부유한 국가들이 가난한 국가들에 투자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과거 경험을 미루어 볼 때 가난한 나라가 스스로 투자할 능력이 있을 때 좋은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21세기가 저성장 체제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알게 될 사실은 예외적인 시기나 따라잡기가 이뤄지는 시기를 제외하면 성장은 늘 비교적 느리게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모든 징후가 앞으로 성장이 더 둔화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성장은 항상 순수한 인구적 요인과 순수한 경제적 요인을 포함하는데, 후자만이 생활수준의 개선을 가능케 해준다.

아주 오랜 기간에 걸친 성장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성장률 추이를 나타내는 아래 표를 보면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이 드러난다.
첫째, 18세기에 시작된 성장 초기 단계는 비교적 완만한 연간 성장률을 나타낸다.
둘째 성장에 대한 인구 요인과 경제적 요인의 기여도는 대체로 비슷했다. 가능한 최선의 추정치에 따르면 세계 GDP 성장률은 1700년부터 2012년까지 연평균 1.6%였는데, 그중 0.8%는 인구 증가를 반영하는 것이고, 나머지 0.8%는 1인당 생산 증가에 따른 것이다.
이 같은 성장률은 오늘날에 비해 낮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구와 1인당 생산 모두 한 해 1%씩 성장하는 것은 1700년 이후 그래왔던 것처럼 아주 오랜 기간 지속된다면 굉장히 빠른 성장이다.
산업혁명 이전 수백 년 동안은 성장률이 사실상 제로 수준이나 다름없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실제로 매디슨의 계산에 따르면 0년과 1700년 사이의 인구증가율과 경제성장률은 0.1%이하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구 증가는 0.06%, 1인당 생산은 0.02%이다)
추정치가 미덥지 못하기는 하지만 고대부터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성장 속도가 연간 0.1-0.2% 이하로 매우 느렸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성장률이 그보다 높았다면 이는 인구가 극소수에 불과했더나 당시 생활수준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생존 수준에도 한참 못 미쳤다는 있을 수 없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인구 요인을 보면 다가오는 여러 세기에도 성장률이 매우 낮은 수준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누적 성장의 법칙

아주 오랜 기간에 걸친 낮은 연간 성장률이 상당한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에서 ‘누적 성장의 법칙’이라 부른다.
구체적으로 1700-2012년 세계 인구는 불과 연평균 0.8% 증가하는데 그쳤지만, 이 같은 증가가 3세기에 걸쳐 이뤄졌다는 것은 세계 인구가 10배 이상으로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연간 성장률이 1%이면 30년 뒤에는 1.35배, 한 세기 뒤에는 3배, 3세기 뒤에는 20배, 1000년 뒤에는 2만 배 이상으로 인구가 늘어난다.
고로 연 1-1.5%를 초과하는 인구증가율은 무한히 지속할 수 없다는 극히 단순한 결론을 얻어낼 수 있다.
어떤 기간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성장과정에 대해 상반된 인식이 가능하다. 1년에 1% 성장은 거의 인식할 수 없을만큼 매우 낮은 성장이다.
그러나 만약 기간을 한 세대, 즉 사회 변화를 평가하는데 가장 적당한 기간인 30년 정도로만 확장해도 그 같은 성장률이 경제 규모를 1/3이나 키우는 결과를 낳으며, 이는 굉장히 커다란 변화다.
이는 각 세대의 인구가 이전 세대와 비교해서 2배로 증가하는 연 2-2.5%의 성장률에 비하면 덜 인상적인 수치지만 사회를 주기적으로 또 심층적으로 바꿔놓고,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서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에 충분하다.

인구 증가의 단계

0-1700년의 평균 인구증가율은 0.2% 보다는 분명히 낮았고, 거의 확실히 0.1%보다 낮았을 것이다.
널리 퍼져 있는 믿음과 달리 맬서스 이론상 매우 낮은 인구 증가 체제가 완전한 인구 정체는 아니었다.
그래도 세계 인구는 0-1000년 사이에 1/4, 1000-1500년 사이에 절반이 늘어났고, 1500-1700년 사이에 또 다시 절반이 증가한 것으로 보이며, 이 기간 인구증가율은 연평균 0.2%에 가까웠다.
인구 증가는 1700년 이후 가속화되어 18세기에 연평균 약 0.4%, 19세기에 연평균 약 0.6%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1700-1913년 가장 급격한 인구 증가 추세를 보였던 유럽은 20세기에 상황이 반전되었는데, 1820-1913년 0.8%에서 1923-2012년 0.4%로 감소했다.
이는 인구 변천(demographic trasition)이라고 알려진 현상인데, 기대수명이 계속 늘더라도 출산율 저하를 상쇄하기에는 충분치 않아서 인구 증가 속도가 점점 더 낮은 수준으로 하락하는 것을 말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유럽보다 더 오랫동안 높은 출산율을 유지했는데, 그 결과 20세기 인구 증가는 아찔할 정도로 치솟았다.
이 지역의 인구는 한 해에 1.5-2%씩 증가했는데, 이는 한 세기 동안 인구가 5배 이상으로 늘어났다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것은 20세기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나타난 연 1.5-2%의 인구증가율은 19세기와 20세기에 미국에 나타난 증가율과 거의 같았다는 점이다.
신대륙의 인구 증가는 다른 대륙 (특히 유럽)에서 온 이민자 때문이라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증가는 오로지 자연적 증가에 기인한 점이라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인구 증가 가속화의 결과 18-19세기 0.4-0.6%였던 세계 인구증가율이 20세기에는 1.4%라는 기록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중요한 점은 이처럼 인구 증가가 무한정 가속화되는 시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1970-1990년 세계 인구는 여전히 1.8%씩 늘어났는데, 1990-2012년 연평균 증가율은 1.3%로 떨어졌다.
공식적인 예측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인구 변천이 더 빨리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지구촌 인구의 안정화로 이어질 것이다.
유엔의 예측에 따르면 인구 증가율은 2030년대까지 0.4%로 떨어지고 2070년대에는 약 0.1%를 기록할 것이다.
이 예측이 맞아떨어지면 세계는 1700년 이전의 매우 낮은 인가 증가 체제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1700-2100년 사이의 세계 인구 증가율은 1950-1990년에 정점을 이루는 벨 커브 형태를 띄게 될 것이다.
21세기 후반 인구가 다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전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인구증가율(연 1%)라는 점을 유의하자. 그 밖의 세 대륙에서 인구는 정체되거나 감소할 것이다.

마이너스 인구 증가?

인구 변화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출산에 관한 결정이 대체로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출산율 같은 복잡한 문제를 결정할 때 심리적 혹은 문화적 설명을 처음부터 배재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의 지식으로 판단해 보건데, 유엔의 중심 시나리오가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수 세기 뒤 세계 인구 증가율은 0.8% 보다 훨씬 더 적은 수치가 될 것이고, 장기적으로 볼 때 인구 증가율이 0.1-0.2% 될 것이라는 공식 전망은 그럴듯한 추론이다.

평등화 요인으로서 ‘성장’

인구 증가는 각국의 발전과 상대적 국력을 좌우하기도 하지만, 불평등 구조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견조한 인구 증가는 상속 받는 부의 중요성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일종의 평등화 역할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 경우 모든 세대는 어떤 의미에서는 스스로 부를 쌓아야 한다.
나는 견조한 인구 증가의 효과에 대한 통찰을 인구 증가 뿐만 아니라 매우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사회에도 어느 정도 일반화 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예컨대 1인당 생산이 한 세대에 10배씩 증가하는 사회에서는 한 사람이 스스로의 노동으로 얼마나 돈을 벌고 저축할 수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 더 낫다.
이전 세대의 소득은 현재 소득에 비해 매우 적어서 부모와 조부모가 쌓은 재산은 가치가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구가 정체되거나 감소하면 이전 세대에 축적된 자본의 영향력이 늘어난다. 경제가 정체될 때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저성장 체제에서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크게 웃돌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런 상황은 장기적으로 부의 분배를 심각한 불평등으로 몰아가는 중요 요인이다.
대체로 상속된 부에 따라 결정되는 계층 구조를 지닌, 자본이 지배하는 과거와 같은 사회는 낮은 성장 체제에서만 생겨나고 존속될 수 있다.
성장이 불평등의 감소나 적어도 엘리트 집단의 빠른 교체에 기여할 수 있는 또 다른 메커니즘이 있는데, 이는 반드시 논의해야 할 주제다.
성장이 제로거나 매우 낮을 때는 직업의 유형 뿐만 아니라 여러 경제적, 사회적 기능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거의 아무런 변화 없이 재생산 된다.
반면 끊임 없는 성장은 그것이 연 0.5%-1.5%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모든 세대에서 새로운 역할이 계속 창조되고 새로운 기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세대의 판단력과 재능이 부분적으로 다음 세대로 이전되는 한 경제성장은 이전 세대에서 엘리트 층에 속하지 않은 부모를 둔 개인들의 사회적 이동성을 늘릴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신분 상승의 가능성이 반드시 소득불평등을 감소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이론적으로 부의 불평등의 재생산과 확대를 제한하므로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이는 소득불평등도 어느 정도 제한하게 된다.
현대의 경제성장이 개인의 능력과 재능을 발현시켜주는 경이로운 수단이라는 통념은 경계해야 한다.
이런 관점은 어느 정도 옳지만, 이런 생각이 19세기 초 이후 온갖 불평등을 정당화 하는데 이용되었으며, 동시에 상상 가능한 온갖 미덕을 들어 새로운 산업경제의 승자들을 미화하는데 이용되었다.

경제성장의 단계

부유한 국가들의 경우 1인당 월소득이 1700년에 불과 100유로에 불과했지만 2012년에는 2500유로 이상으로 올랐다.
생산성, 즉 노동시간당 생산은 더 큰 폭으로 늘어났는데, 이는 각 개인의 평균 노동시간이 극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더 부유해질 수록 더 많은 자유시간을 얻기 위해 더 적게 일하기로 결정했다.
이같은 놀라운 성장은 대부분 20세기에 일어났다.
그런데 구매력이 20배, 10배, 6배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분명 2012년의 유럽인들이 1913년에 생산되고 소비된 것보다 6배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소비했다는 뜻은 아니다.
유럽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장기간의 구매력과 생활수준의 향상은 무엇보다 소비 구조의 변화에 의해 좌우된다.
주로 식품류로 가득 찼던 소비자 장바구니가 점차 공산품과 서비스 품목이 골고루 섞인 훨씬 더 다양한 내용의 장바구니로 바뀌었다.

구매력 10배 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산업 혁명 이후 생활 수준의 놀라운 성장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유일한 길은 현재의 화폐가치로 소득 수준을 환산하고, 이를 여러 다른 시기의 다양한 상품 및 서비스의 가격 수준과 비교하는 것이다.
상품과 서비스는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 것이 표준화된 방법이다.
공산품의 경우 생산성 증가가 전체적인 경제성장보다 빨랐다. 그러므로 이 부문의 가격은 모든 가격의 평균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떨어졌다.
식품류의 생산성은 장기간에 걸쳐 꾸준하게 상당한 폭으로 증가했다. 그러므로 그 어느 때보다 소수의 사람이 크게 증가한 인구를 먹일 수 있게 되고 많은 일손이 여유시간을 갖게 되어 다른 일에 종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서비스 부문의 생산성 향상은 일반적으로 낮아서 서비스 부문의 가격은 모든 가격의 평균보다 더 빠르게 상승했다.
한 가지 지표로 모든 변화를 요약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헛되고 지나친 단순화인지 알지만, 어쨌건 그 어느 것도 오늘날의 실제적인 성장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산업혁명 이래 전 세계 사람들이 더 잘 먹고 입고 여행하고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삶의 물질적 조건이 놀랄만큼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성장: 다양해지는 생활양식

서비스 부문의 생산성 증가는 다른 부문보다 빠르지 않이 이 부문에서 본 구매력은 증가 폭이 훨씬 낮았다.
전형적인 예로 수 세기 동안 기술 혁신의 덕을 별로 보지 못한 ‘순수한’ 서비스인 이발이 자주 언급된다.
머리를 깎는데는 지금도 한 세기 전과 같은 시간이 걸리므로 이발 요금은 이발사의 임금과 같은 속도로 높아졌고, 이발사의 임금은 평균 임금 그리고 평균 소득과 같은 속도로 높아졌다.
다시 말해 21세기 전형적인 임금노동자가 한 시간 일해서 구매할 수 있는 이발 서비스는 100년 전에 한 시간 일해서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와 같으므로 이발 서비스로 표시한 구매력은 커지지 않았다. (아마 실제로는 약간 줄어들었을 것이다)
(서비스업에 대한 여러 설명 생략)

성장의 종말?

과거의 성장은 언제나 연 1-1.5%를 넘지 않는 비교적 느린 속도로 이루어졌다.
역사적으로 이보다 더 뚜렷이 빠른 성장(3-4%이상)을 보인 사례는 다른 나라를 급속하게 따라잡고 있던 나라들에서만 나타났다.
이 같은 급성장은 본질적으로 따라잡기가 이뤄지고 나면 끝나는 것이고, 따라서 제한된 기간 동안 나타나는 과도기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1인당 생산 증가율은 1700-2012년에 연평균 0.8%를 기록했는데, 이를 기간별로 나누면 1700-1820년에 0.1%, 1820-1913년에 0.9%, 1913-2012년에 1.6%를 기록했다.
1700-2012년 세계 인구증가율도 똑같이 0.8%를 기록했다.
다음 표는 시기별, 대륙별 경제성장률을 보여준다.
이 표의 핵심은 역사적으로 볼 때 세계적인 첨단 기술을 보유한 국가라 하더라도 오랜 기간에 걸쳐 연평균 1.5%를 넘는 1이낭 생산 증가율을 기록한 사례는 없다는 점이다.
최근 수십 년을 보면 가장 부유한 국가들은 그보다 더 낮은 증가율을 보였다.
아직도 성장률이 3-4%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역사와 논리 모두 환상임을 보여준다.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과 같은 경제학자들은 1인당 생산 증가율이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둔화될 수 밖에 없으며, 2050-2100년에는 연 0.5%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
고든의 분석은 증기기관과 전기의 발명 이후 계속된 여러 혁신의 물결을 비교하고 가장 최근의 물결이 이전에 비해 성장 잠재력이 훨씬 더 낮다는 연구 결과에 기초한 것이다.
최근의 혁신은 기존의 생산 방식을 크게 바꾸지도 못할 뿐더라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크게 향상 시키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중대한 사회적 변화를 내포한 연 1% 성장

내가 보기에 1인당 생산 증가율이 연 1%라는 것은 사실 대단히 빠른 것이며,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성장이다.
30년이라는 한 세대가 지나면 연 1%의 성장률은 35% 이상의 누적 성장을 가져오며, 1.5%의 성장률은 누적으로 50% 이상이 된다.
실제로 이는 생활양식과 고용에 중요한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1980년대에는 인터넷, 휴대전화도 없었고 비행기 여행도 활성화 되지 못하고 첨단 의학기술이 발달하지도 못했고, 소수의 사람만이 대학을 다녔다.
이는 오늘날의 사회가 18세기와 같이 연간 성장률이 제로에 가깝거나 0.1%에 그쳤던 과거 사회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연간 성장률이 0.1-0.2%에 그치는 사회는 변화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과정을 되풀이 한다.
19세기 초 이후의 선진국에서처럼 연 1%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곳은 심층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거듭하는 사회다. 이는 사회적 불평등 구조와 부의 분배의 동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성장은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 받은 부의 불평등을 퇴색시킴으로써 상속된 부가 결정적인 요인이 될 가능성을 줄여준다.

전후 시대의 후손: 대서양 연안 국가들의 뒤엉킨 운명

유럽 대륙, 특히 프랑스는 이례적으로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한 영광의 30년에 대해 짙은 향수를 품고 있다.
사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전후 30년은 예외적인 시기였는데, 이는 한 마디로 유럽이 1914-1945년 시기 미국에 크게 뒤졌지만 영광의 30년 기간에 빠르게 따라잡았기 때문이다.
일단 이 따라잡기가 끝나자 유럽과 미국은 둘 다 세계적인 기술 선도국이 되었고, 선도국 경제의 속성상 두 곳 모두 비교적 느린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1인당 생산은 1820-2012년 내내 연간 1.5-2%로 거의 같은 성장세를 보였다.
서유럽은 1950-1970년에 성장의 황금기를 경험했지만, 이후 수십년 간 성장률은 정점에서 1/2, 1/3으로 낮아졌다.
1980년경 시작된 경제자유화나 1945년에 시작된 정부개입주의는 칭찬이나 비난을 받을만하지 않다.
프랑스, 독일, 일본은 1914-1945년 전쟁으로 몰락한 이후 각각 어떤 정책을 택했건 이와 상관없이 영국과 미국을 따라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성장의 이중 벨 커브

요약하자면 지난 3세기에 걸친 글로벌 성장은 매우 높은 정점을 보여주는 종형 곡선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인구 증가와 1인당 생산 증가는 18세기와 19세기에, 특히 20세기에 점차 가속화 되었고, 이제 21세기의 남은 기간에는 훨씬 더 낮은 수준으로 다시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인구 증가와 생산 증가를 나타내는 두 벨 커브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인구 증가 곡선을 보면 증가율의 상승이 훨씬 더 이른 시기인 18세기에 나타났고 감소도 훨씬 더 빨리 시작되었다. 이것은 인구 변천이 이미 대체로 완료되었음을 보여준다.
세계 인구 증가율은 1950-1970년에 연간 약 2%로 정점을 찍었고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누구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런 과정은 계속 되어 세계 인구증가율이 21세기 후반에는 거의 제로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1인당 생산 성장률을 놓고 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경제적으로’ 성장이 시작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성장률은 18세기 내내 제로에 가까웠으며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약간 올라가기 시작했고, 20세기가 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인식할 만한 현실이 되지 못했다.
세계의 1인당 생산 성장률은 1950-1990년 유럽의 따라잡기 과정 덕분에, 그리고 1990-2012년 아시아, 특히 중국의 따라잡기 과정 덕분에 2%를 넘어섰다.
아래 그림은 2012년 이후 경제 성장 예측치 중 ‘중간값(median)’을 보여주는 데 이는 비교적 낙관적인 예상이다.
이 낙관적인 중간값 시나리오에 따르면 세계 1인당 생산 성장률은 2012-2030년과 2030-2050년에 연 2.5%를 약간 웃돌 것이고, 그 이후에는 1.5% 이하로 떨어졌다가 2070년 이후에는 다시 1.2%로 떨어질 것이다.
세계의 1인당 생산 성장률을 보여주는 이 벨 커브를 인구증가율을 타나태는 벨 커브와 비교해 보면 다음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인구증가율 벨 커브 보다 훨씬 더 늦게 정점에 다다른다.
둘째 이 벨커브에 나타난 성장률은 제로나 제로 가까이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 1%가 약간 넘는 연간 성장률을 보이는데, 이는 전통사회의 성장률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이 두 곡선을 합하면 세계 총생산 성장률을 나타내는 아래 곡선을 얻게 된다.
세계 총생산 성장률은 1950년 이전까지 항상 연 2% 미만이었다가 1950-1990년에 4%로 치솟았는데, 이는 역사상 유례없이 높았던 인구증가율과 1인당 생산 성장률이 합쳐져서 나타난 결과였다.
그리고는 다시 떨어지기 시작해 1990-2012년 신흥국들, 특히 중국의 극히 높은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3.5% 이하로 떨여졌다.
중간값 시나리오를 따를 경우, 이러한 추세는 2030년까지 계속되다가 2030-2050년에 3%, 21세기 후반에 이르면 약 1.5%로 떨어질 전망이다.

인플레이션 문제

어떤 이들은 인플레이션이 순전히 화폐에 관한 현상이므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한 모든 성장률은 이른바 실질 성장률을 가리키는 것으로 명목성장률에서 인플레이션율을 뺀 것이다.
실제 인플레이션은 이 연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희소성의 원칙에 바탕을 둔 리카도의 이론에서 상대가격 변동은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만약 어떤 가격 예컨대 토지, 건물 혹은 석유의 가격이 장기간에 걸쳐 아주 많이 오른다면, 이는 우연히 이들 희소 자원의 최초 소유자가 된 이들에게 유리하도록 부의 분배를 영원히 바꿔 놓을 수 있다.
상대가격의 문제 외에 인플레이션은 그 자체도 부의 분배의 동학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실제로 2차 대전 직후 선진국들이 지고 있던 공공부채를 없애는데 인플레이션이 큰 역할을 했다.
인플레이션은 또한 20세기 내내 종종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방식으로 사회집단 간에 다양한 재분배의 결과를 낳았다.
반면 18세기와 19세기에 번성했던 부에 기초한 사회는 장기간 통화 가치가 매우 안정적으로 지속되었다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18-19세기의 통화가치 안정

무엇보다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인플레이션이 20세기 특유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 이전 1차대전 때까지 인플레이션은 제로이거나 혹은 제로에 가까웠다. 물가는 수년간 혹은 길면 수십 년간 이따금 급상승하거나 급락한 적은 있어도 일반적으로 이 같은 간헐적 물가 변동은 결국 안정을 되찾았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장기간의 물가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고전 문학에 나타난 돈의 의미

(소설에서 등장한 돈의 가치에 이야기 생략)

20세기 화폐의 지위 약화

통화 가치가 안정된 세계는 1차대전 발발과 함께 영원히 무너졌다.
전쟁 비용을 대느라 그리고 군인들과 그들에게 사용하는 갈수록 더 비싸고 복잡해지는 무기의 비용을 조달하느라 정부는 빚의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1914년 8월에 이미 주요 참전국들은 자국 통화의 금태환을 끝냈다.
전쟁 후 각국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같이 엄청난 공공부채를 처리하기 위해 지폐를 찍어내는 인쇄기에 의존하게 되었다.
1920년대 금본위제를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1930년대 경제위기로 무산되었다.
2차대전 이후 금본위제 역시 조금도 더 강건하지 않았는데, 이 체제는 1946년에 시작되어 달러의 금태환이 중지된 1971년에 끝났다.
전쟁이 촉발한 인플레이션 과정이 결코 진정으로 끝나지 않은 것을 보면 모든 국가에서 1914-1945년의 충격이 전쟁 전에 누렸던 세계의 화폐가치에 대한 확신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음을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