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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불평등과 집중: 기본적 지표

모든 사회의 소득불평등은 다음 세 가지 측면으로 나뉠 수 있다.
노동소득의 불평등
자본 소유와 이 자본이 벌어다주는 소득의 불평등
이 두 가지 조건의 상호 작용

보트랭의 설교

(<고리오 영감>에 대한 내용 생략)
보트랭은 라스티냐크에게 공부, 재능, 노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본질적으로 환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러고는 라스티냐크가 유산보다 직업적 전문성이 더 중요한 법률이나 의학 분야의 공부를 계속할 경우 어떤 직업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상세하게 알려주고, 특히 그 각각의 직업에서 기대할 수 있는 연봉에 대해 정확하게 말해준다.
결론은 분명했다. 라스티냐크가 인생의 많은 것을 포기해가며 학과 수석을 차지하고 승승장구한 끝에 성공한 법률가가 된다 하더라도 보통 수준 밖에 안되는 소득으로 그럭저럭 살아가면서 진짜 부자가 되겠다는 희망은 아예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에 비해 보트랭이 라스티냐크에게 사회적 성공을 위해 제안한 전략은 훨씬 더 효과적이다. 만약 라스티냐크가 같은 하숙집에 살고 있으며 그만 바라보는 빅토린 양과 결혼한다면 당장 100만 프랑의 재산을 손에 쥘 것이다.
그러면 그는 고작 스무 살에 매년 5만 프랑의 이자소득(자본의 5%)를 얻게 된다. 수년 뒤에나 검사의 월급에서 기대할 수 있는 안락한 생활 수준의 10배를 곧바로 얻는 것이다.

핵심 질문: 노동이냐 유산이냐?

19세기 프랑스의 소득 및 부의 계층 구조에서 최고 부유층이 누릴 수 있는 생활수준은 노동에 기초한 소득만으로 기대할 수 있는 정도를 크게 넘어섰다.
상황이 이런데 왜 일을 하겠는가? 왜 도덕적으로 행동하겠는가? 사회적 불평등 자체가 비도덕적이고 부당한데, 철저히 비도덕적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써서 자본을 착복하는게 무엇이 어떻단 말인가
19세기 프랑스에서, 20세기 초까지도 노동과 학업만으로는 상속받은 부와 그로부터 벌어들이는 소득으로 누릴 수 있는 안락함을 얻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노동으로 얻는 소득이 항상 공평하게 분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상속 받은 재산에서 얻는 소득에 비해 노동소득이 얼마나 중요한가의 문제로 사회정의에 관한 논의를 축소시키는 것도 불공평한 일이다.
그럼에도 민주적 근대성은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따른 불평등이 다른 불평등 보다는 정당하다는 믿음을 토대로 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길 희망한다.
실제로 보트랭의 설교는 20세기 유럽에서 적어도 한동안은 유효하지 않았다. 2차대전 이후 수십 년 동안 상속받은 재산의 중요성은 많이 줄어들었고, 아마도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과 학업이 계층 구조의 꼭대기로 오르는 가장 확실한 사다리가 되었을 것이다.

노동 그리고 자본과 관련된 불평등

1부에서 소득은 언제나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의상 모든 사회에서 소득불평등은 이 두 가지 구성요소, 즉 노동소득의 불평등과 자본소득의 불평등이 더해진 결과다.
이 두 구성 요소 각각이 더 불평등하게 될수록 전체적인 불평등도 커진다.
세 번째 결정적인 요소는 이 두 차원의 불평등 사이의 관계다. 높은 노동소득을 얻는 개인은 또한 어느 정도로 높은 자본소득을 얻을까?
재산이 많은 개인이 중간 정도의 재산을 보유한 사람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얻을 경우, 자본소득의 불평등이 자본의 불평등 자체보다 클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이것은 불평등을 배가시키는 강력한 메커니즘이 될 수 있으며, 21세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부의 계층 구조의 모든 단계에서 평균 수익률이 같다면 정의상 두 불평등은 일치한다.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를 분석할 때는 불평등의 이런 다양한 측면과 구성 요소를 신중히 구분해야 한다.
이는 규범적이고 도덕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관찰된 불평등의 변화 양상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메커니즘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동소득 불평등의 경우, 이 메커니즘에는 다양한 기술의 공급과 수요, 교육제도의 상태, 노동시장과 임금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규칙과 제도가 포함된다.
자본소득 불평등의 경우 가장 중요한 과정은 저축 및 투자 행위, 증여와 상속 관련 법률, 부동산과 금융시장의 작용이다.

언제나 노동보다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자본

소득불평등을 측정하려 할 때 관찰되는 첫 번째 규칙적인 패턴은 자본과 고나련도니 불평등이 항상 노동과 관련된 불평등보다 크다는 것이다. 자본 소유와 자본소득의 분배는 항상 노동소득의 분배보다 더 집중되어 있다.
데이터를 구할 수 있는 모든 국가, 모든 시기에서 이런 규칙적인 패턴이 발견되며, 그 정도나 언제나 매우 놀라울 정도다.
이 현상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 살펴보면, 노동소득 상위 10%가 일반적으로 전체 노동소득의 25-30%를 받는 반면, 자본소득 상위 10%는 항상 전체 부의 50% 이상을 소유한다.
더 놀라운 점은 임금 분포에서 하위 50%에 속하는 사람들이 전체 노동소득에서 상당한 몫을 받는 반면, 부의 분포에서 하위 50%에 속한느 사람들은 자본을 전혀 혹은 거의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과 관련된 불평등은 일반적으로 그리 심하지 않으며 거의 합리적으로 보인다. 반면 자본과 관련된 불평등은 항상 극심하다.
이 규칙적인 패턴은 결코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규칙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자본축적과 부의 분배의 동학을 결정하는 경제적, 사회적 과정들의 특징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분명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더 부유하다. 하지만 실제로 각 연령집단 내 부의 집중은 전체 인구의 부의 집중과 비슷할 정도로 크다. 즉 통념과 달리 세대 간 전쟁은 계층간 전쟁을 대체하지 않았다.
고도의 자본 집중은 주로 상속받은 재산과 이 재산이 일으키는 누적효과로 설명된다.

불평등과 집중의 정도

다음 표들은 다양한 시기에 다양한 국가에서 관찰된 분배 상황을 정리한 것이다.
노동소득 불평등과 관련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처럼 가장 평등한 사회에서의 분배는 노동소득이 가장 높은 10%가 총노동소득의 20%를 가져가고 노동소득이 가장 낮은 50%가 총노동소득의 약 35%를 차지한다. 중간의 40%는 총노동소득의 45%를 차지한다.
최상위 10%가 총임금의 20%를 가져간다면 이 집단에 속하는 각각의 사람은 평균적으로 해당 국가에서 평균 임금의 2배를 번다는 계산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최하위 50%가 총임근의 35%를 차지한다면 이 집단은 평균 임금의 70%를 번다고 할 수 있다.

하류층, 중산층, 상류층

(하류층, 중산층, 상류층 용어에 대한 논쟁 생략)

계급투쟁 혹은 1퍼센트의 투쟁?

모든 사회, 심지어 가장 평등한 사회에서도 확실히 상위 10%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다. 이 집단에는 소득이 평균 2-3배인 사람들과 10배, 20배의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이 포함된다.
상위 10%는 다시 상위 1%와 나머지 9%로 나눠 보면 이해하기 편하다. 전자는 지배층, 후자는 부유층이라고 할 수 있다.
상위 1%는 이 책이 제시하는 역사적 연구의 맥락에서 특히 흥미로운 집단이다. 모든 나라에서 상위 1%는 소득분배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형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전통적인 사회에서 노동소득 계층과 자본소득 계층은 종종 음의 상관관계를 가졌는데, 많은 재산을 보유한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사회에서 이 둘은 일반적으로 양의 상관관계를 가지지만 결코 와전한 상관관계는 아니다.

노동과 관련된 불평등: 온건한 불평등?

노동과 관련된 불평등이 항상 자본과 관련된 불평등보다 훨씬 낮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소득이 국민소득의 2/3에서 3/4를 차지하고 노동소득의 분배가 국가들 사이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무시해서는 안된다.
가장 공평하게 분배된 국가에서 노동소득 상위 10%는 총임금의 20%, 하위 50%는 35%를 가져간다.
반면 2010년대 초의 미국처럼 가장 불평등한 국가들에서는 상위 10%가 총임금의 35%를 버는 반면, 하위 50%에게는 겨우 25%만 돌아간다.

자본과 관련된 불평등: 극심한 불평등

부가 가장 평등하게 배분되는 사회(1970-1980년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는 가장 부유한 10%가 국부의 50-60%를 소유한다.
놀라운 사실은 이 사회들 모두에서 인구의 절반이 거의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가난한 50%는 예외 없이 국부의 10% 이하를 소유하며, 일반적으로는 5% 이하를 소유한다.
결과적으로 부의 측면에서 가장 평등한 국가들(1970-1980년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부의 불평등은 임금과 관련된 불평등이 가장 심한 국가들(2010년대 초의 미국)에서의 임금 불평등보다 상당히 높다.
내가 아는 한 자본 소유의 불평등이 ‘완만하다’고 표현될 수 있는 사회는 존재한 적이 없다. 완만하다는 것은 사회의 가장 가난한 50%가 1/5이나 1/4 정도의 몫을 차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의 분배에서 상위 10%에 속하는 계층 내에서도 극도로 불평등한 양상이 나타나는데, 상위 1%에 속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대체로 25배 부유한 반면, 그 다음 9%에 속하는 사람들은 4배 더 부유하다.
부의 구성 요소도 집단마다 차이가 큰데, 부의 계층 구조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부동산의 중요성은 급격히 줄어든다.
상위 9% 집단에서는 부동산이 전체 부의 절반을 차지하는 반면, 상위 1% 집단에서는 금융자산 및 사업자산이 부동산보다 분명하게 두드러진다. 특히 재산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소유한 부는 거의 전부가 주식이거나 합자회사의 지분이다.
주택은 중산층과 적당히 잘사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투자 대상이지만, 진정한 부를 주로 구성하는 것은 언제나 금융자산 및 사업자산이다.
(결국 부동산보다 기업의 지분을 가진 사람이 훨씬 부유하다)

중요한 혁신: 세습중산층

세습 중산츠으이 성장은 20세기 선진국들에서 부의 분배를 두고 일어난 주욯나 구조적 변화였다.
1900-1910년 유럽의 모든 국가에서 자본의 집중은 오늘날보다 훨씬 더 극단적이었는데, 가장 부유한 10%가 국부의 거의 전부를 소유했다.
상위 10%가 소유한 부는 전체 부의 90%에 이르렀고, 가장 부유한 1%가 소유한 부는 전체 부의 50% 이상이었다.
중간의 40%는 국부의 겨우 5%를 차지했는데, 이는 가장 가난한 50%가 소유한 부(5% 미만)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부의 분포에서 중간의 40%가 하위 50%만큼 가난했다는 의미에서 당시에는 중산층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사실상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반면 소수의 사람이 사회 자산의 가장 큰 몫을 차지했다.
상위 10%는 상위 1%보다 훨씬 더 많은 엘리트로 구성되었지만 상위 10%와 1% 부근에서 부의 분배를 나타내는 곡선이 가장 급격하게 가팔라졌다.
취약하다고는 하나 세습중산층의 등장은 중요한 역사적 혁신이었다.
재산을 소유한 유사 중산층의 부상과 함께 상위 1%가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몫은 급격하게 감소했다. 유럽에서 상위 1%가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몫은 20세기 접어들 무렵 50%이상이었으나 21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20-25%로 감소했다.

총소득의 불평등: 두 개의 세계

총소득의 불평등 수준은 노동소득 불평등과 자본 소유의 불평등 사이에서 감소했다.
총소득의 불평등이 자본소득의 불평등보다 노동소득의 불평등에 더 가깝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상위 10%가 국민소득의 50% 이상을 차지할 수 없다거나 이 한도를 넘기면 국가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할만한 근거는 없다.
핵심적인 문제는 불평등의 크기 자체라기 보다는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 사회의 총소득이 대단히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데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초세습사회로 물려받은 부가 매우 중요하고 부의 집중이 극심한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상위 10%가 전체 부의 90%, 상위 1%가 전체 부의 50%를 소유한다.
다른 하나는 초능력주의 사회이다. 슈퍼스타의 사회라고 할만한 이런 사회는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에서 나타났다. 이 사회는 매우 불평등하지만 물려받은 부보다 노동소득이 가장 높은 사람들이 소득계층의 정상을 지배한다.
물론 두 유형의 불평등은 공존할 수 있다.

종합적인 지수들의 문제점

지니 계수나 타일 지수등 불평등에 대한 지수들은 다차원적인 현실을 일차원적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보다는 총소득과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다양한 십분위들과 백분위들의 몫을 보여주는 분포표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

공식 발표 자료들의 순결한 베일

비슷한 맥락으로 OECD나 국가 통계 기관들의 보고서에 종종 인용되는 십분위 배율 같은 지수를 사용할 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비율들이 구조상 90번째 백분위 이상의 분포 추이는 전적으로 무시하기 때문.
이 자료들은 분배의 최상위층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90번째 백분위 이상의 소득이나 부는 나타내지 않는 지수들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사회표와 정치산술로의 복귀

이상의 이유로 나는 이번 장에서 검토한 분포표들이 종합지표나 십분위 배율보다 부의 분배를 연구하는데 더 나은 도구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접근 방식이 국민계정 방식과도 더 일치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