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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서양철학사/ 11세기 교회 개혁

유럽은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11세기에 처음으로 급속한 진보를 이룸.
이러한 진보는 수도원 개혁과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그 다음 교황 체제와 교회 조직으로 확대 되었다.
11세기가 막을 내릴 무렵 최초의 스콜라 철학자들이 배출 되었다.
교육 수준은 성직자 계급에서 많이 높아졌고, 세속 귀족 계급에서도 상당한 수준까지 높아졌다.
초기 단계의 개혁 운동은 주창자들의 정신 속에 자리 잡았다가 도덕적 동기에 의해 현실로 나타남.
성직자들의 부패와 타락 때문에 사람들은 성직자들이 그들의 원칙에 더 적합한 생활을 하도록 하는 일에 착후함.
여기는 또 다른 동기가 있었는데, 성직자와 속인을 완전히 분리함으로써 성직자 계급의 힘을 키우는 것.
교회 개혁의 승리가 곧바로 황제와 교황의 권력 투쟁으로 이어진 사태는 당연한 귀결이었음.
(이하 성직자의 부패, 교황과 황제의 대립 등에 대한 내용 생략)
성 안셀무스는 신의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 제창자로 유명함
안셀무스는 ‘신’을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대상으로 정의하고 어떤 사유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과 꼭 같으면서 존재하는 다른 사유 대상이 더 큰 대상이 되므로 사유의 모든 대상들 가운데 가장 큰 대상이 존재해야 하는 까닭은 그렇지 않으면 더 큰 대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 그렇기 떄문에 신은 존재한다고 주장함.
신학자들은 안셀무스의 논증을 수용하지 않았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안셀무스의 논증을 거부함.
안셀무스는 플라톤 철학의 많은 요소를 습득했는데, 플라톤의 이상들이 존재한다고 믿고, 여기에서 또 다른 신 존재 증명을 도출해 냄.
신플라톤 학파의 논증들에 따라 그는 신의 존재 뿐만 아니라 삼위일체도 입증하겠다고 선언함.
안셀무스는 이성이 신앙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함. 그는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라고 말함.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를 추종하여 신앙이 없이는 이해도 불가능하다고 주장.
신은 의로운 존재가 아니라 의로움 자체라고 말함.
안셀무스는 선대 그리스도교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플라톤의 전통에 속함.
때문에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절정에 달한 ‘스콜라’ 철학의 뚜렷한 특징을 드러내지 않음.
중세의 플라톤 사상은 현대의 연구자가 플라톤의 저술에서 도출한 사상과 여러 면에서 달랐음.
중세 시대 플라톤 사상은 종교와 명백한 관련이 없는 거의 모든 요소를 누락하는데 그치지 않고, 종교철학 내에서는 다른 요소를 희생시키고 특정한 측면을 확대하거나 강조했음.
이렇게 플라톤 사상 체계에 일어난 변화는 이미 플로티노스에 의해 나타남.
아리스토테렐스에 대해서도 단편적으로 알려졌으나, 정반대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남.
12세기까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알려진 것이라고는 보이티우스가 번역한 <범주론>과 <명제론>이 전부였음.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저 변론가로 생각되었던 반면, 플라톤은 종교철학자이자 이상 이론의 창시자로 여겨짐.
중세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체계에 대한 편견은 차츰 바로 잡혔으나 플라톤에 대한 생각은 르네상스 시대까지 변하지 않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