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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서양철학사/ 플라톤의 지식과 지각

플라톤이나 다른 특정 학파에 속한 철학자들 사이에는 ‘지식’이라 부를만한 지식은 감각에서 유래하지 않으며, 유일하게 진정한 지식은 개념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전혀 다른 학설이 존재한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2+2=4’는 진정한 지식이지만, ‘눈은 하얗다’는 진술은 너무 모호하고 불확실해서 철학자의 진리 체계 안에서 어떤 자리도 차지하지 못한다.
플라톤은 프로타고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는 개념을 비판.
돼지나 원숭이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지각하는 동물이므로 만물의 척도로 보아야 한다.
만일 프로타고라스가 옳다면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알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프로타고라스는 신들만큼 지혜로울 수 있지만, 바보만큼도 지혜롭지 못할 수 있다.
어떤 판단이 다른 판단보다 더 참될리는 없지만, 더 나은 결과를 낸다는 의미에서 다 나을 수 있다고 주장.
더불어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 유전설’을 비판
만물이 온갖 방식으로 변한다면, 봄(seeing)을 안 봄(not-seeing)이 아니라 봄이라 부를 권리가 없으며, 지각(perception)을 비지각(not-perception)이 아니라 지각이라 부를 권리도 없다.
무엇이 영속적인 흐름 속에 있다 하더라도 말의 의미가 적어도 당분간 고정되어야 하는 까닭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 주장도 하지 못하고 어떤 주장도 거짓이 아니라 참이라고 말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담론과 지식이 가능하려면 조금이라도 불변하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를 칭송함.
플라톤은 우리가 눈이나 귀로 지각하지 않고 눈과 귀를 통해서 지각한다고 지적하며, 우리가 획득한 어떤 지식은 감각 기관과 아무 관련도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촉각으로 딱딱함과 부드러움을 지각하지만 딱딱함과 부드러움이 있다거나 반대되는 성질이라고 판단하는 역할은 바로 정신이 담당한다. 정신만이 존재를 파악하게 되며, 존재를 파악하지 못하면 우리는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감각만으로 사물을 인식하지 못하는 까닭은 감각만으로는 사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러므로 지식은 인상이 아니라 반성 속에 존재하며, 지각이 지식이 아닌 까닭은 ‘지각이 존재를 파악할 때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고 따라서 진리를 파악할 때도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러셀의 플라톤 반박
‘지식은 지각이다’에 대한 플라톤의 비판에 대한 비판
(상세한 내용 생략)
논리학과 수학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밖의 다른 지식에 관한 플라톤의 논증은 전부 오류투성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에 대한 플라톤의 비판에 대한 비판
(상세한 내용 생략)
이 논점에 대해서는 플라톤이 옳은 주장을 한 것으로 판단. 그러나 경험주의자는 지각이란 경험적 자료에 따른 추론의 정확성을 판정하는 시금석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만물은 흐름의 상태에 있다.’에 대한 플라톤의 비판에 대한 비판
논리적 대립항은 편의를 위해 고안되었지만, 계속되는 변화는 정량 장치(quantitative apparatus)가 필요한데, 플라톤은 그 가능성을 무시한다. 그러므로 플라톤이 계속되는 변화에 대해 말한바는 대체로 정량 장치가 필요하다는 기준에서 벗어나 있다.
말의 의미가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면 담론이 불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한 번 지나치게 절대적인 견해에 빠지기 쉽다.
말이 겪는 의미의 변화는 말이 묘사하는 변화 자체보다 더 느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말의 의미 변화가 전혀 일어나서는 안 될 필요까지는 않다.
플라톤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향을 받아 다른 지식을 지나칠 정도로 수학과 비슷하게 만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