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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서양철학사/ 로크의 인식론

존 로크는 역사상 일어난 혁명 가운데 가장 온건했으며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둔 1688년 명예혁명의 주창자이다.
명예혁명이 겨냥한 목표들은 가장 온건했지만 대부분 착오 없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이후 영국에서 더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로크의 견해는 타당한 면은 물론이고 잘못된 면까지도 실제적으로 유용했다.
제일 성질은 물체에서 분리되지 않는 성질들로, 견고성, 연장, 모양, 운동, 정지와 수량 등이다. 제이 성질은 나머지 전부, 즉 색, 소리, 냄새 등이다.
그는 제일 성질은 물체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반면, 제이 성질은 지각한느 자 안에 존재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눈이 없으면 색도 없으며 귀가 없으면 소리도 없는 것이다.
로크의 이원론은 양자 이론이 출현할 때까지 실용 물리학을 지배했다. 물리학자들은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로크의 이원론을 가정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이론은 아주 중요한 여러 발견의 원천으로서 효과가 있었다.
물리계가 운동하는 물질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이론은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소리, 열, 빛, 전기 이론이 근거한 바탕이었다.
로크 사상의 특징은 독단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는 점인데, 이 점은 그에게서 시작되어 자유주의 운동 전체로 전파되었다.
로크가 사용한 이성의 역할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우리가 확실하게 인식한 내용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개연성만 지니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지지할 수 없는데도 실제 생활에 수용하면 좋은 명제들에는 어떤 부류가 있는지 탐구하는 일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개연성의 근거는 두 가지로 우리가 하는 경험과의 일치와 타인의 경험에 따른 증거이다.’
로크는 어떤 명제이든 명제에 부여한 찬성의 정도는 그것을 지지해주는 개연적인 근거에 의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종종 확실성에 미치지 못하는 개연성에 의지해 행동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이런 고려에 따른 올바른 습관은 ‘서로 자비와 인내로 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전부는 아니라도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리라고 생각한 것에 대해 확실하고 의심 불가능한 증거를 대지 못하면서 각자 자신의 의견을 가지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오성 곧 이해력은 종종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이성 말고는 다른 어떤 안내자도 인정할 수 없고, 맹목적으로 다른 사람의 의지와 명령에 복종할 수도 없는 까닭이다.
우리는 당연히 서로 상대방의 무지를 가엾게 여기며 너그럽고 공정하게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무지를 없애려 애써야 한다.
로크는 경멸하는 태도로 형이상학을 대했다. 그는 당대 형이상학을 지배하던 실체 개념이 모호하고 막연해서 무용지물이라 생각하지만, 실체 개념을 송두리째 거부할 정도로 모험을 감행하지는 않는다.
경험론이 모든 지식은 경험에서 유래한다는 학설이라면 로크는 아마 경험론의 창시자로 생각될만하다.
그는 본유관념을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어디에서 이성과 지식의 재료를 얻는가? 이 질문에 나는 경험에서 온다고 한마디로 답변한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경험에 기초하며 궁극적으로 경험에서 모든 지식이 도출되기 마련이다.’
관념은 두 가지 근원에서 유래한다. 감각과 정신의 활동인 지각인데, 지각을 ‘내감(internal sense)’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는 관념을 수단으로 이용해야만 생각할 수 있고 모든 관념은 경험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우리가 획득한 어떤 지식도 경험에 앞설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로크는 지각이란 ‘지식에 이르는 첫 단계이자 지식을 얻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재료가 모이는 입구’라고 말한다.
현대인에게 당연한 소리로 들리지만, 당시 정신은 모든 종류의 사물을 선험적으로 알 수 있는 능력이라 여겼기 때문에 지식이 지각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선언은 새롭고 혁명적인 학설이었다.
로크는 ‘일반 명사에 대하여’에서 보편 개념에 대해 극단적인 유명론자의 입장을 취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개별자들뿐이지만 우리는 ‘인간’과 같은 일반 관념을 만들어서 여러 개별자에게 적용하며 일반 관념에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일반 관념의 일반성은 오로지 다양한 개별 사물들에 적용된다거나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성립한다.
그러니까 일반 관념은 우리 정신 안의 관념으로 존재할 경우 바로 실제로 존재하는 다른 모든 사물처럼 개별성을 가진 존재라는 말이다.
‘실체의 이름에 대하여’에서 스콜라 철학의 본질주의를 논박한다.
사물이 실재하는 본질을 지닐지도 모르지만, 본질이란 물리적 구조, 즉 대체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무엇으로서 적어도 스콜라 철학에서 말한 ‘본질’은 아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본질은 순 언어적인 무엇으로서 일반 명사의 정의 내용으로만 존립한다.
경험론과 관념론은 지금까지 만족스런 해답을 찾지 못한 철학적 문제 한가지와 마주하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신과 우리의 정신 활동 이외에 다른 사물을 인식하는지를 보여주는 문제이다.
로크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찰하지만 그의 견해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아직까지 신뢰성(credibility)과 일관성(consistency)을 동시에 갖춘 철학을 세우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로크는 신뢰성을 자기 철학의 목표로 삼았으며, 목표에 이르러 일관성을 포기했다.
로크에 따르면 자기 이익과 전체 이익은 긴 안목으로 보아야 일치되므로 가능한 장기적인 이익을 고려하며 행동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사려(prudence)해야 한다.
사려가 계속 훈계해야 하는 덕인 까닭은 덕에서 벗어난 타락이 모두 사려를 제대로 하지 못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려의 강조는 자유주의의 특징이다.
사려가 자본주의의 발흥과 관련된 까닭은, 사려를 잘하는 자가 부유해지는 반면 사려를 하지 못하는 자는 가난해지거나 여전히 가난한 상태로 머물기 때문이다.
사익과 공익이 조화를 이룬다는 신념은 자유주의의 특징으로 로크의 철학에 내재해 있던 신학적 기초가 무너진 후에도 오래 살아남았다.
로크는 자유는 참된 행복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필연성과 정념 통제에 좌우된다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견해를 사익과 공익이 단기적으로 일치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일치한다는 자신의 학설에서 도출한다.
로크는 도덕이 증명될 수 있다고 거듭 말하지만 바라던 만큼 충분하게 확장시키지 못한다.
(이하 로크의 논증의 헛점에 대한 러셀의 비판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