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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21세기 자본-노동의 소득분배

자본/소득 비율에서 자본-노동 소득분배율까지

자본수익률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이를 살펴보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를 활용했다.
비록 U자 곡선의 깊이가 확연히 나타나지는 않지만 국민소득 중 자본소득의 몫 α\alpha 의 일반적인 변화 추이는 β\beta와 같은 U 자 곡선으로 설명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본수익률 rr은 자본량 β\beta의 변화를 약화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즉, rr은 β\beta가 낮은 기간에는 높고 β\beta가 높은 기간에는 낮게 나타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영국과 프랑스에서 국민 소득 중 자본소득의 몫이 35-40%였는데, 20세기 중반에는 20-25%로 줄어들었고,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에는 25-30%로 늘어났다.
이것은 18세기와 19세기의 5-6% 정도의 평균 자본수익률과 상응하는데, 이 수익률은 20세기 중반에는 7-8%로 높아졌고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에는 2-5%로 떨어졌다.
실제 수익률은 자산 형태와 개인 재산의 규모에 따라 크게 달라지며 불평등을 증대시키는 경향이 있다.
구체적으로 산업자본을 포함해 위험부담이 가장 큰 자산의 수익률은 흔히 7-8% 이상인 반면, 위험부담이 적은 자산의 수익률은 상당히 낮다.
18세기와 19세기의 농경지는 4-5%였고, 21세치 초반의 부동산은 3-4%정도 이다.
당좌예금이나 저축예금 등 소규모 자산의 실질수익률은 겨우 1-2% 밖에 안되거나 심지어 더 적고, 물가상승률이 은행의 낮은 명목이자율을 초과할 경우에는 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

소득이라는 유량: 한 시점의 총량보다 더 평가하기 어려운 것

자본에 대한 보상이 포함되어 있을 비임금노동자들의 소득과 관계된 또 다른 중요한 주의 사항은 이러한 소득을 다른 소득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하 자료 평가가 어렵다는 내용 생략)

순수한 자본수익률이라는 개념

도표 6.3-6.4에 표시된 평균 수익률이 어느정도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여기서 순수한(pure) 자본 수익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수익률을 표시한다.
(이하 자료 정리에 대한 내용 생략)

역사적 관점에서 본 자본수익률

추정치를 바탕으로 얻어낸 중요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18세기와 20세기 초까지 프랑스와 영국의 순자본수익률은 연 4-5% 안팎을 오르내렸으며 더 일반적으로는 3-6%를 오갔다. 장기적으로 뚜렷한 상향 추세나 하향 추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인한 대규모의 재산 붕괴와 막대한 자본 손실이 나타난 이후 순수한 수익률은 6%를 넘었지만, 이후 과거의 낮은 수준으로 매우 빠르게 회귀했다.
그러나 아주 장기적으로 본다면 순수한 자본수익률은 약간 하락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18세기와 19세기에는 순수한 자본수익률이 종종 4-5%를 웃돌았던데 반해, 21세기 초에는 자본/소득 비율이 과거의 높은 수준을 회복함에 따라 3-4%에 가까워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주 장기간에 걸쳐 순수한 자본수익률이 사실상 안정적이라는 것은 이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이 수치들을 좀 더 합리적인 관점에서 보기 위해 무엇보다 다음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8세기와 19세기에 자본이 소득으로 전환될 때 그 비율은 가장 흔하고 가장 위험이 적은 형태의 자본의 경우 보통 연 5%정도였다.
즉 자본 자산의 가치는 그 자산에 의해 창출된 연간 소득의 20배에 해당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때로 5배로 증가하기도 했다.
(이하 문학작품에서 나온 수치들 생략)

21세기 초의 자본수익률

(생략)

실질자산과 명목자산

(자료에서 명목과 실질 구분 내용 생략)
인플레이션이 어떤 경우에는 자산 및 자산 수익률 그리고 자산의 분배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의 효과는 장기간의 구조적 효과라기보다는 재체로 자산의 범주 사이에서 부를 재분배하는 효과다.
앞서 인플레이션이 두 차례 세계대전 이후에 부유한 국가의 공공 부채를 청산하는데 사실상 중심적인 역할을 했음을 설명했다.
하지만 높은 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 지속되는 동안 투자자들은 실질자산에 투자함으로써 자신들의 자산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당좌예금과 저축예금 같은 소규모 자산은 인플레이션에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데 반해, 대규모 자산은 보통 장기적으로 물가와 가장 잘 연동되며 가장 다각화되어 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자본은 무엇을 위해 사용되는가?

자본시장과 노동시장을 모두 순수하고 완전한 경쟁 시장이라고 가정하는 가장 단순한 경제모형을 따를 경우 자본수익률은 자본의 한계생산성, 즉 자본을 한 단위 추가적으로 투입할 때 나오는 추가적인 생산과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
하지만 좀 더 복잡하고 현실적인 모형 속에서 자본수익률은 다양한 관련 집단의 상대적인 협상력에 달려 있다.
상황에 따라 자본수익률은 자본의 한계생산성보다 더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다.
어쨌든 자본수익률은 두 가지 힘에 의해 결정된다. 첫째는 기술이고 둘째는 자본총량의 규모다.
기술은 당연히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만약 자본이 생산요소로서 전혀 유용하지 않다면 자본의 한계생산성은 제로가 된다.
자본수익률이 제로인 사회라면 국민소득과 국민생산은 노동의 몫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지만 모든 인간사회에서 상황은 이와 다르게 전개되었다.
모든 문명사회에서 자본은 두 가지 경제적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자본은 주거 서비스를 창출한다.
둘째, 자본은 다른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생산요소 (토지, 도구, 건물, 기계, 특허 등)의 역할을 한다.

자본의 한계생산성 개념

자본의 한계생산성이란 자본 한 단위를 추가적으로 투입할 때 이뤄지는 추가적인 생산의 가치로 정의할 수 있다.
예컨대 어떤 농업사회에서 한 사람이 00유로에 상당하는 토지 혹은 도구를 추가해 연간 5유로에 상당하는 식량 생산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가정하자.
이때 100유로의 투자에 대한 자본의 한계생산성은 연간 5유로 또는 5%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순수하게 완전경쟁 조건일 때 한계생산성은 자본가가 노동자로부터 얻는 연간 수익률이다.
만약 자본가가 5% 이상의 수익을 어드려고 한다면 노동자는 다른 자본가에서 토지와 도구를 빌려올 것이다.
그리고 만약 노동자가 5% 미만의 수익을 지불하려 한다면 토지와 농기구는 다른 노동자에게 가게 될 것이다.
분명 자본가가 토지나 도구를 임대한다든가 노동력을 구매하는데 독점적인 지위를 갖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후자의 경우 공급 독점이 아니라 ‘수요 독점’에 해당된다. 이럴 경우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자기 자본의 한계생산성보다 더 큰 수익률을 요구할 수 있다.
자본의 한계생산성이라는 개념은 해당 사회의 자본-노동 소득분배를 결정짓는 제도 및 규칙과 관계없이 정의된다는 점을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다.
예컨대 토지와 도구의 소유주가 자신의 자본을 스스로 활용한다면 그 자신에게 투자한 자본의 수익을 별도로 따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자본은 여전히 유용하며, 한계생산성은 그에 따른 수익이 외부 투자자에게 지불되는 경우와 똑같을 것이다.
이것은 자본의 전부 혹은 일부를 집산화하기로 결정한 경제체제에서나 혹은 구소련의 예처럼 개인의 자본 수익을 모두 없앤 극단적인 곳에서나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너무 많은 자본은 자본수익률을 떨어뜨린다

너무 많은 자본은 자본수익률을 하락시킨다. 자본-노동 소득분배의 구조를 결정하는 규칙이나 제도와는 상관없이, 자본총량이 증가할수록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감소하리라는 것은 당연히 예상할 수 있다.
이미 각 농업노동자가 수천 헥타르의 농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면 1헥타르의 농지가 추가됨으로써 발생하는 추가적인 산출은 제한적일 것이다. 한계생산성은 어느한도를 넘어서면 감소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질문은 자본총량이 증가할 때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얼마나 빠르게 감소하느냐하는 것이다.
특히 자본/소득 비율 β\beta가 증가할 때 자본수익률 rr이 얼마나 많이 하락하느냐가 핵심이다.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자본수익률 rr이 자본/소득 비율 β\beta가 증가하는 비율보다 더 큰 폭으로 하락한다면 이는 β\beta가 증가할 때 국민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몫 α=r×β\alpha = r \times \beta가 하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rr의 하락이 자본/소득 비율 β\beta의 증가를 상쇄하고도 남는 것이다.
둘째, 자본수익률 rr이 자본/소득비율 β\beta가 증가하는 비율보다 덜 하락한다면 국민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몫 α=r×β\alpha = r \times \beta는 증가한다. 이 경우 자본수익률 하락의 효과는 자본/소득 비율의 증가에 따라 자본의 몫이 증가하는 것을 막지는 못하고 다만 완화할 뿐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관찰된 역사적 추이에 근거해서 살펴보면 장기적으로 두 번째 경우가 더 적절해 보인다.
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 α\alpha는 자본/소득 비율 β\beta와 마찬가지로 U자 곡선을 따라 간다.
그러나 자본수익률의 역사적 변화는 α\alpha의 U자 곡선의 깊이를 상당히 축소시킨다. 이는 2차대전 이후 자본 부족 현상이 나타나면서 한계생산성 체감의 원리에 맞게 자본수익률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영향이 자본/소득 비율을 나타내는 β\beta의 U자 곡선의 영향을 압도할 만큼 그리고 자본의 몫을 나타내는 α\alpha를 역 U자 곡선으로 바꾸어놓을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두 경우 모두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은 기술의 변화무쌍함에 달려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것은 한 사회가 소비하고자 하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자본과 노동을 결합시킬 수 있는 이용 가능한 다양한 기술의 종류에 달려 있다.
이 문제에 관해 생각할 때 경제학자들은 흔히 ‘생산함수’의 개념을 사용한다.
이는 해당 사회에 존재하는 기술적 가능성들을 반영한 수학 공식인데, 생산함수의 특징 중 하나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대체탄력성을 정의하는 것이다.
즉,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노동을 자본으로, 자본을 노동으로 대체하는 것이 얼마나 수월한지 그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예컨대 생산함수의 계수가 완전히 고정되어 있다면 대체탄력성은 제로다. 즉 농부에게 더도 덜도 아닌 1헥타르의 농지와 하나의 도구만이 필요할 것이다.
각 노동자가 100분의 1헥타르의 추가적인 농지 혹은 하나의 도구를 더 가진다고 해도 추가적인 자본의 한계생산성은 제로가 될 것이다.
반대로 대체탄력성이 무한대라면 자본의 한계생산성은 이용 가능한 자본과 노동의 양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다. 특히 자본수익률이 고정되어 있고 그것이 자본의 양에 영향을 받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이 경우 자본을 축적하면 언제나 고정된 비율로, 예컨대 자본 한 단위당 연 5% 혹은 10%라는 식으로 생산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을 더 추가하는 것만으로 마음대로 생산을 증가시킬 수 있는 완전히 자동화된 경제를 생각하면 된다.
이 두 극단적인 경우 모두 현실에서는 적절하지 않다. 중요한 문제는 노동과 자본 사이의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큰가 아니면 작은가 하는 것이다.
대체탄력성이 0과 1사이라면 자본/소득 비율 β\beta의 증가는 자본의 한계생산성을 많이 감소시켜 자본의 몫 α=r×β\alpha = r \times \beta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반면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크면 자본/소득 비율 β\beta의 증가는 자본의 한계생산성을 제한적으로 감소시켜 자본의 몫 α=r×β\alpha = r \times \beta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탄력성이 정확히 1이라면 두 효과가 상쇄된다. 자본수익률 rr은 자본/소득 비율 β\beta의 증가와 같은 비율로 감소해 자본의 몫 α=r×β\alpha = r \times \beta은 변하지 않는다.

코브-더글러스를 넘어서: 자본-노동 소득분배율의 안정성에 관한 문제

대체탄력성이 정확하게 1인 경우는 1928년 경제학자 찰스 코브(Charles Cobb)와 폴 더글러스(Paul Douglas)가 처음 제안한 소위 ‘코브-더글러스 생산함수’와 일치한다.
코브-더클러스 생산함수에 따르면 어떤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소득에서 차지하는 자본의 몫은 순수한 기술적 매개변수로 생각되는 고정된 계수 α\alpha와 항상 동일하다.
예컨대 α=30\alpha = 30라면 자본/소득 비율에 상관없이 자본소득은 국민소득의 30%를 차지할 것이다.
저축률과 성장률이 장기적인 자본/소득 비율 β=sg\beta = {s \over g}가 국민소득의 6배가 되도록 한다면, 자본수익률은 5%가 되고 그 결과 자본/소득 비율은 30%가 된다.
장기적인 자본총량이 국민소득의 3배밖에 되지 않는다면 자본수익률은 10%로 상승할 것이다. 장기적인 β=sg\beta = {s \over g}가 국민소득 10배에 해당될 정도의 저축률과 성장률을 기록한다면 자본수익률은 3%로 하락할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자본의 몫은 항상 30%가 될 것이다.
코브-더글러스의 생산함수는 2차대전 이후 일부는 긍정적이고 일부는 부정적인 이유로 그러기 단순하다는 이유로 경제학 교과서들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인기의 원인은 자본-노동 소득분배율의 안정성이 사회질서에 대한 상당히 평화롭고 조화로운 견해를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의 안정성은 비록 그것이 사실로 밝혀진다 해도 결코 조화로움을 보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안정이 자본 소유와 소득 분배의 극단적이고도 옹호할 수 없는 불평등과 함께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념과는 달리 국민소득 중 자본의 몫의 안정성은 결코 자본/소득 비율의 안정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본/소득 비율은 시기나 국가에 따라 매우 다양한 수치를 보일 수 있고, 따라서 특히 자본 소유의 엄청난 국제적 불균형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역사적 현실은 완벽하게 안정적인 자본-노동 소득분배율이 시사하는 관념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이다.
코브-더글러스 가설은 때로는 특정한 시기나 부문들에 대한 훌륭한 추정이며 어쨌든 더 깊이 있는 생각을 발전시키기 위한 유용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 가설은 장기적으로, 단기적으로 또는 중기적으로 관찰된 역사적 패턴의 다양성을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한다.
(이하 이론이 불완전하다는 내용 생략)

21세기 자본-노동의 대체: 1보다 큰 대체탄력성

아주 장기적으로 볼 때 자본과 노동 간의 대체탄력성은 1보다 컸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자본/소득 비율 β\beta의 증가는 국민소득 가운데 자본소득이 차지하던 몫인 α\alpha를 약간 증가시켰던 것으로 보이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직관적으로도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크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자본에 다양한 용도가 있다는 현실의 상황과 맞아떨어진다.
게다가 관찰된 역사적 변화들은 자본으로 할 수 있는 새롭고 유용한 것들을 찾아내는 일이 언제든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21세기에 노동에 대한 자본의 대체탄력성이 1을 넘어 얼마나 더 커질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분명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역사적 자료에 따르면 1.3-1.6으로 추정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잘 정립된 단 하나의 이론은 부유한 국가들에서 최근 수십 년간 관찰된 자본/소득의 비율 β\beta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21세기의 성장이 둔화된다면 β\beta의 상승세는 세계 곳곳으로 확산될 수 있다.
또한 이런 추세는 아마도 국민 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인 α\alpha를 지속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다. 분명히 자본수익률 rr은 β\beta가 증가함에 따라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역사적 경험에 따르면 결국 물량효과가 가격효과를 능가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이는 자본축적의 효과가 자본수익률 하락의 효과를 능가할 것임을 의미한다.
1970-2010년에 가장 부유한 국가들에서 자본/소득 비율이 증가한 만큼 국민소득 중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몫이 증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상승은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크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자본의 이동성이 높아지고 투자를 유치하기 우해 국가 간의 경쟁이 격화된 수십 년 사이 노동에 대한 자본의 협상력이 강화된 사실과도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두가지 효과는 수십 년간 서로를 강화했고, 이런 현상은 미래에소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α\alpha의 지속적인 상승과 함께 구준히 증가하는 β\beta의 상승을 막을 자기 조정 메커니즘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통적 농경사회: 1보다 작은 대체탄력성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할 수많은 기회가 존재한다는 것이 현대 경제의 중요한 특징인데, 자본이 주로 토지 형태를 취했던 농경사회의 전통 경제에서는 이런 특징이 없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결국 자본을 확장성 있는 사업 –기술 위주–에 투자하느냐, 확장성 없는 사업 –부동산– 에 투자하느냐가 중요한 듯)
이용가능한 역사적 자료들은 전통적 농경사회에서 대체탄력성이 1보다 현저하게 낮았다는 점을 분명하게 시사한다.
특히 미국이 유럽보다 토지가 훨씬 더 풍부했음에도 18세기와 19세기에 자본/소득 비율과 지대로 측정된 토지의 가치가 유럽보다 상당히 낮았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러한 사실은 매우 논리적인데, 만약 자본이 노동에 대한 준비된 대체물로 기능하려면 자본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

인적자본은 환상에 불과한가?

장기적으로 볼 때 국민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은 1800-1810년 35-40%에서 2000-2010년 25-30%로 하락했고, 같은 기간 국민소득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몫은 60-65% 에서 70-75%로 증가했다.
노동의 몫이 늘어난 것은 단지 생산과정에서 노동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토지, 부동산 및 금융자본에 돌아갈 수익을 줄어들게 한 것은 바로 증대되고 있는 인적자본의 힘이다.
이 해석이 옳다면 그것이 가리키는 변화는 실로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현 시점에서는 자본/소득의 비율이 보이는 장기적인 변화를 완벽하게 판단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자본의 몫이 앞으로 수십 년동안 19세기 초반 수준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비록 기술의 구조적 형태 그리고 자본과 노동의 상대적 중요성이 변하지 않거나 또는 기술의 변화가 조금 더디다고 해도 여전히 현재 자본/소득의 비율이 증가하는 현상은 국민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몫을 역사적인 최고점까지, 어쩌면 그 이상 수즌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에 대한 자본의 장기적 대체탄력성이 명백히 1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연구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현대의 기술은 여전히 엄청난 양의 자본을 사용하며, 더 중요한 것은 자본이 여러 용도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본가는 자본수익률을 제로로 만들지 않으면서 어마어마한 자본을 축적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비록 기술이 상대적으로 노동에 유리한 방식으로 변한다 할지라도 장기적으로 자본소득이 감소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둘째, 국민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목스이 추정치가 35-40%에서 25-30%로 장기적인 감소를 보인 것은 분명 그럴듯하고 의미있는 변화지만, 인류 문명을 변화시킬 만큼은 아니다.
분명 인간의 기술 수준은 지난 두 세기 동안 현저하게 발달해왔다.
하지만 그만큼 산업, 금융 그리고 부동산의 자본총량 또한 엄청나게 증가했다.

자본-노동 소득분배율의 중기적 변화

역사적으로 관찰된 가장 중요한 점은 의심의 여지 없이 1800-1860년에 걸친 산업혁명 초기에 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이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로버트 앨런이 제시한 영국에 대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걸쳐 35-40%에서 19세기 중반에는 45-50%로 10%가량 증가했다.
이 자료는 이러한 상승이 1870-1900년에 자본의 몫이 비슷한 정도로 하락해 거의 상쇄되었고, 1900-1910년에 다시 약간 높아진 결과 벨 에포크 시대에 자본이 차지하는 몫은 프랑스 혁명기나 나폴레옹 시대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기간에 걸친 지속적인 경향보다는 오히려 ‘중기적’인 변동에 관해 말할 수 있다.
19세기 전반에 국민소득의 10%가 자본으로 옮겨갔다는 사실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기간에 경제성장의 가장 많은 몫이 자본가의 이윤으로 돌아간 반면 임금은 정체되었기 때문이다.
앨런은 그 원인을 주로 기술 변화로 인한 자본생산성의 증가와 농촌에서 도시로의 노동력의 대이동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용 가능한 역사적 자료를 보면 프랑스도 이와 비슷한 흐름을 따랐음을 알 수 있다.
1810-1850년의 활발한 산업성장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임금은 심각하게 정체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임금과 이윤이 차지하는 몫의 이 같은 변화는 2차대전 이후 세 가지 서로 다른 국면을 거쳤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윤은 1945년에서 1968년까지 가파르게 증가했고, 이어 1968년에서 1983년까지는 현격히 감소했다가. 1983년 이후 매우 급격하게 증가했으며 1990년대 초에 안정되었다.

마르크스와 이윤율 하락의 재검토

마르크스에게 “부르주아는 제 스스로 무덤을 판다”라는 핵심적인 메커니즘은 ‘무한 축적의 원리’였다.
다시 말해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증가하는 자본을 축적하는데, 이는 결국 참단한 이윤율, 즉 자본수익률의 하락으로 이어져 마침내 그들 스스로 몰락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수학적 모형을 사용하지 않고 그의 산문이 반드시 명쾌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생각을 확실히 알기는 어렵지만, 그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한 논리적이고 일관된 한 가지 방법은 동태적인 법칙 β=sg\beta = {s \over g}를 성잘률 gg가 제로 혹은 제로에 근접하는 특별한 경우에서 검토하는 것이다.
gg는 생산성 증가율과 인구증가율의 합인 장기적인 구조적 성장률을 측정한 것이다.
그러나 1950년대 로버트 솔로(Robert Solow)가 성장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를 수행하기 전, 19세기와 20세기 초 모든 경제학자와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의 머리속에는 생산성의 영구적이고 지속적인 향상에 의해 추동되는 구조적 성장이라는 개념이 명백히 정립되거나 공식화되어 있지 않았다.
그 당시 암묵적인 가설은 생산의 증가, 특히 제조업 생산의 증가는 무엇보다 주로 산업자본의 축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더 많은 생산은 각각의 노동자가 더 많은 기계와 설비를 이용했기 때문이지 노동과 자본의 생산성 자체가 증가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생산성 증가만이 장기적인 구조적 성장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구조적 성장이 없고 생산성과 인구증가율의 합인 gg가 제로일 경우 마르크스가 묘사했던 것과 아주 유사한 논리적 모순에 처하게 된다.
저축률 ss가 플러스가 되는 순간부터, 즉 자본가가 권력을 키우고 이익을 보존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삶의 수준이 이미 풍족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이유로 매년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는 순간부터 자본/소득 비율은 무한대로 상승한다.
일반적으로 gg가 제로에 가까우면 장기적으로 자본/소득 비율 β=sg\beta = {s \over g}는 무한대에 접근하게 된다.
그리고 β\beta가 극도로 커지면 자본수익률 rr은 점점 더 낮아져 제로에 근접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 α=r×β\alpha = r \times \beta는 결국 전체 국민소득을 잠식해 버릴 것이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동태적 모순은 따라서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논리적 탈출구는 자본축적 과정을 균형잡히게 할 수 있는 구조적 성장 뿐이다.
법칙 β=sg\beta = {s \over g}가 명확히 보여주듯이 새로운 자본의 단위들이 영원히 추가되는 것을 상쇄할 수 있는 요소는 생산성과 인구의 영원한 증가 뿐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자본가들은 정말로 자기 무덤을 판다.
(마르크스가 옳았다는 이야기)

두 케임브리지 논쟁을 넘어서

자본축적과 동태적 균형의 가능성에 관한 문제가 계속 논란을 일으켰는데, 1950년대와 1960년대 있었던 유명한 ‘케임브리지 자본 논쟁’이 좋은 사례다. (영국의 케임브리지와 미국의 케임브리지 사이의 대결이므로 소위 ‘두 케임브리지 논쟁’이라 불린다)
이 논쟁의 요점을 상기해 보자. 경제학자 로이 해러드(Roy Harrod)와 에브세이 도마(Evsey Domar)가 1930년대 후반에 처음 β=sg\beta = {s \over g} 공식을 명확하게 소개했을 때, 이 공식은 흔히 g=sβg = {s \over \beta}로 변환되었다.
특히 해러드는 1939년 β\beta는 이용가능한 기술에 의해 고정되므로(계수가 고정되어 있고 노동과 자본의 대체가 불가능한 생산함수의 경우처럼) 성장률은 전적으로 저축률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만약 저축률이 10%이고 기술 여건상 자본/소득 비율이 5라면 생산 능력은 연 2%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성장률은 인구증가율과 반드시 일치해야 하므로 성장은 ‘면도날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본질ㅈ거으로 불안정한 과정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 이론에서는 자본이 항상 너무 많거나 너무 적어서 과잉 설비와 투기적 거품을 초래하거나 실업을 유발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도 업종 부문과 시기에 따라 이 둘 모두를 유발할 것이다.
해러드의 직관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에 대한 자본의 대체탄력성이 장기간에 걸쳐 1보다 컸다는 사실이 보여주듯이, 자본/소득 비율은 장깆거으로 상대적인 신축성을 보인다.
1948년 도마는 해러드보다 g=sβg = {s \over \beta}법칙을 좀 더 낙관적이고 융통성 있는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도마는 저축률과 자본/소득 비율이 어느 정도로는 서로 조정 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더 중요한 것은 1956년 솔로가 처음 제시한 대체 가능한 생산요소들을 가진 생산함수인데, 이로써 해러드의 공식을 뒤집어 β=sg\beta = {s \over g}라고 쓰게 되었다.
이 공식은 장기적으로 자본/소득 비율이 저축률과 경제의 구조적 성장률에 의해 조정되며, 그 반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1950년대와 1960년대에도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기반을 둔 경제학자(솔로와 새뮤얼슨을 포함하며, 대체로 가능한 생산요소들을 가진 생산함수를 옹호했다)와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근무하는 경제학자 사이에 논쟁은 계속되었다.
영국 케임브리지 학자들은 성장이 항상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고 주장하는 솔로의 모형이 케인스가 주장한 단기적인 변동을 지닌 중요성을 부정한다고 생각했다.
솔로가 주장한 소위 신고전파 성장 모형이 승리를 거둔 것은 1970년대 이후였다.
(이하 위 논쟁이 무의미했고, 자료가 부족했다는 내용 생략)

저성장 체제 속에서의 자본의 귀환

역사적 저성장기로 돌아가보자. 특히 인구 증가가 제로이거나 혹은 오히려 감소할 때, 자본의 몫은 필연적으로 증가한다.
저성장 사회에서 대규모 자본총량이 재건되는 경향은 β=sg\beta = {s \over g} 법칙으로 나타낼 수 있으며,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정체된 사회에서는 과거에 축적된 부가 자연히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오늘날 유럽에서 자본/소득 비율은 이미 국민소득의 5-6배 정도로 증가했는데, 이는 18세기와 19세기, 1차대전 직전 수준과 비교해 약간 낮은 수치이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볼 때 21세기에 자본/소득 비율이 이 수준을 유지하거나 더 높아지는 것이 전적으로 가능하다.
저축률이 약 10%를 유지하고 장기간의 성장률이 약 1.5%에서 안정화 된다면, 글로벌 자본총량은 이론적으로 연소득의 6-7배까지 높아질 것이다.
성장률이 1%로 떨어지면 자본총량은 소득의 10배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변덕스러운 기술

2부의 주된 교훈은 역사적 과정에서 자본과 자본 소유로부터 나오는 소득의 중요성을 필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자연발생적인 힘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생산성의 향상과 지식의 확산에 기초한 현대의 성장은 마르크스가 예견한 대재앙을 피해 자본축적 과정이 균형을 이루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뿌리 깊은 자본의 구조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