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의 뇌는 버려라
•
이러한 진화 이야기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삼위일체의 뇌(triune brain)'로 알려져 있듯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나는 생존을, 하나는 느낌을, 하나는 생각을 담당한다.
◦
가장 안쪽에 있는 층, 다른 말로 '도마뱀의 뇌(lizard brain)'는 이른바 고대의 파충류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우리의 생존 본능이 들어 있는 곳이다.
◦
'변연계(limbic system)'라 불리는 가운데 층은 선사시대의 포유류로부터 물려 받은 것으로 감정을 담당하는 오래된 부분을 담고 있다고 추정된다.
◦
대뇌피질(cerebrum cortex)의 일부인 가장 바깥층은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있으며 이성적 사고의 근원이라고 한다. 신피질(neocortex)라고도 알려져 있다.
◦
신피질 일부를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이라 부르는데, 이곳은 감정적 뇌와 파충류의 뇌를 조절해 우리가 비합리적이고 짐승처럼 굴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
삼위일체의 뇌 가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매우 커다란 대뇌피질을 가졌다는 것에 주목하고 이를 의심할 나위 없는 이성적 본성의 증거로 본다.
•
삼위일체의 뇌 가설은 과학을 통틀어 가장 성공적이었으며 가장 널리 퍼진 오류 중 하나다.
•
인간의 뇌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나쁜 행동은 내면의 고삐 풀린 고대 야수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좋은 행동도 이성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리고 이성과 감정은 서로 전쟁을 벌이지도 않으며 심지어 이 둘이 뇌의 각각 다른 부분에 살지도 않는다.
•
뇌 진화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미 '삼위일체의 뇌' 가설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들을 이미 갖고 있던 때에 칼 세이건의 <에덴의 용>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
전문가들은 일찍이 신경세포라 불리는 뇌세포들의 분자 구성에서 발견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증거를 확보하고 있었다. 1990년대 이르러 전문가들은 뇌가 세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발상을 완전히 버린다. 더 정교한 방법으로 신경세포를 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이런 발상은 더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
오늘날 과학자들은 신경 세포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안의 유전자를 조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도 사용한다. 과학자들은 종이 달느 두 동물의 신경세포들이 매우 달라 '보일' 수 있지만 '여전히 같은 유전자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 신경 세포들이 같은 진화적 기원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
예컨대 인간과 쥐의 특정 신경세포에서 동일한 유전자들을 발견한다면 그 유전자를 가진 유사한 신경세포들이 인간과 쥐의 마지막 공통 조상(common ancestor)에게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
이러한 방법들을 사용해 과학자들은 진화가 마치 퇴적암의 지층처럼 뇌에 층을 쌓아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쥐의 뇌와 명백히 다르다. 층을 쌓아온 방식이 아니라면 우리 뇌는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달라졌을까?
◦
뇌는 진화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점점 커지면서 재조직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
예컨대 당신의 뇌에는 네 개의 신경세포 클러스터 또는 뇌 영역이 들어 있다. 이것이 당신이 몸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촉각을 만들어내도록 돕는다. 이 뇌 영역들을 통틀어 일차체성감각피질(primary somatosensory cortex)라고 한다. 하지만 쥐의 뇌에서 일차체성감각피질은 하나의 영역으로 되어 있어 여기에서 모든 과업을 수행한다.
◦
우리가 매클린처럼 인간과 쥐의 뇌를 간단히 눈으로만 들여다본다면 인간의 뇌에서 발견된 체성감각 영역 중 세 개가 쥐에게는 없다고 믿기에 이를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 영역은 인간에게서만 새로 진화된 것이며 인간 특유의 기능들이 이 영역에 들어 있으리라고 결론 내릴 것이다.
◦
하지만 과학자들은 우리의 네 개 영역과 쥐의 한 개 영역에 같은 유전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이 한 토막의 발견이 진화에 관해 무언가를 암시해준다. 바로 지금으로부터 약 6,600만 년 전에 살았던 인간과 설치류의 마지막 공통 조상은 오늘날 우리 뇌의 네 개 영역이 담당하는 기능들을 수행하는 하나의 체성감각 영역을 가졌으리라는 것이다.
◦
우리 조상들의 뇌와 몸이 더 크게 진화함에 따라 그 하나의 영역이 확장되어 그때까지 맡았던 책임들을 재분배하기 위해 세분화되었을 것이다. 뇌 영역들의 재배치, 곧 영역 간 분리와 통합을 통해 더 복잡한 뇌가 만들어졌고, 이로써 더 크고 복잡해진 신체를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
다른 종들의 뇌들을 비교해 유사점을 찾아내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진화의 경로는 일직선이 아니며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
게다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 때가 있다. 육안으로는 달라 보이는 부분들이 유전자상으로는 비슷한 것일 수 있고, 유전자상으로는 다른 것들이 매우 비슷해 보일 수 있다.
◦
그리고 심지어 다른 동물의 두 종의 뇌에서 같은 유전자를 찾아내더라도 이 유전자들은 서로 다른 기능을 할 수 있다.
•
분자유전학의 최신 연구들 덕분에 우리는 파충류와 포유류 동물들이 인간과 같은 종류의 신경세포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 전설적인 인간의 신피질을 만들어낸 신경세포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
인간의 뇌는 파충류의 뇌에다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과 이성을 담당하는 부분이 진화해 덧붙여지는 방식으로 생겨나지 않았다. 그보다는 훨씬 더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났다.
•
과학자들은 최근 포유류의 뇌가 단 하나의 제조계획(manufacturing plan)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파충류와 다른 척추동물들도 같은 계획대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신경과학자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아직은 이러한 연구에 관해 알지 못한다. 아는 사람이라 해도 이러한 발견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제 막 생각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
이 공통된 뇌 제조계획(brian-manufacturing plan)은 난자가 수정된 직후, 배아가 신경세포를 만들어내기 시작할 때부터 돌아간다. 포유류의 뇌를 형성하는 신경세포들은 놀라울 정도로 예측 가능한 순서대로 만들어진다.
◦
이 순서는 생쥐, 쥐, 개, 고양이, 말, 개미핥기, 인간, 그리고 지금까지 연구한 모든 종류의 포유류 동물에게서 똑같이 발견된다. 그리고 유전학적 증거들은 이러한 순서가 파충류와 조류, 그리고 일부 어류에게도 나타남을 강력히 시사한다.
◦
그렇다 과학적 지식에 따르는 한 당신은 다른 물고기의 피를 빨아먹으며 살아가는 칠성장어와 똑같은 뇌 제조계획을 갖고 있다.
•
그토록 많은 척추동물의 뇌가 같은 순서로 발달한다면 왜 뇌들은 제각각 달라 보인느 것일까? 그 이유는 만들어지는 프로세스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며, 종별로 각 단계를 지속하는 기간이 짧거나 길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구성요소들은 똑같다. 차이가 나는 것은 오직 시간이다.
◦
예컨대 대뇌피질을 구성하는 신경세포들이 만들어지는 단계는 인간보다 설치류가 짧고, 도마뱀은 이보다 훨씬 더 짧다. 그래서 우리의 대뇌피질은 크고 생쥐의 것은 작으며, 이구아나의 것은 훨씬 더 작거나 없는 것이다.
◦
그래서 인간의 뇌에 새로운 부분이란 없다. 우리 뇌에 있는 신경세포들은 다른 포유류의 뇌에도 들어 있으며, 다른 척추동물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발견으로 삼위일체의 뇌 가설의 진화적 토대는 흔들린다.
•
커다란 뇌에 비례해서 커다란 대뇌피질을 갖고 있다는 것은 특별할 것 없다. 사실상 이것이 정확히 우리 인간이 가진 것이다.
◦
모든 포유류는 신체 크기에 비해 비교적 커다란 뇌를 가졌으며, 대뇌피질 역시 뇌에 비해 비교적 커다랗다. 우리의 대뇌피질은 상대적으로 뇌가 작은 원숭이, 침팬지, 그리고 다양한 육식동물에게서 발견되는 상대적으로 작은 대뇌피질의 확대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코끼리나 고래의 더 커다란 뇌에서 발견되는 더 커다란 대뇌피질의 축소 버전이기도 하다.
◦
만약 원숭이의 뇌가 인간의 뇌만큼 크게 자랄 수 있다면 그 대뇌피질의 크기 또한 우리의 것과 같아질 것이다. 코끼리는 우리보다 대뇌피질의 크기가 훨씬크다. 하지만 인간이 코끼리 크기가 된다면 인간의 뇌도 마찬가지로 커질 것이다.
•
따라서 우리 대뇌피질의 크기는 진화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며, 여기에 어떤 특별한 설명도 필요하지 않다. 대뇌피질의 크기는 또한 얼마나 이성적인 종인가에 관해 아무것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
서구의 과학자와 지식인들은 '커다랗고 이성적인 대뇌피질'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고는 오랜 세월 그 개념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이렇다. 진화과정에서 뇌의 발달 단계 중 어떤 것은 더 길게, 어떤 것은 더 짧게 지속되도록 특정 유전자들이 변형되었으며, 이것이 뇌 안에서 상대적으로 크거나 작은 부분들을 만들어낸다.
•
그러니 당신에게는 도마뱀 뇌도 감정적인 야수의 뇌도 없다. 감정만 전담하는 변연계 같은 것도 없다. 그리고 이름부터 잘못 붙여진 신피질은 새로 나타난 부분도 아니다. 많은 척추동물들이 동일한 신경세포들을 발달시켰으며, 몇몇 동물의 경우 결정적 단계가 충분히 오래 지속되면서 이 세포들이 대뇌피질을 형성하는 것이다.
◦
인간의 신피질, 대뇌피질, 또는 전전두피질이 이성의 근원이라고 선언한다든가, 전두엽이 비이성적인 행동을 억제하기 위해 이른바 감정적인 뇌 영역을 조절한다는 이야기에 관해 당신이 읽거나 들은 모든 것은 시대착오적이거나 한심할 정도로 정확하지 못하다.
◦
삼위일체의 뇌라는 발상과 감정 및 충동과 이성 간의 싸움에 관한 서사는 현대의 신화, 근거 없는 통념이라 할 수 있다.
•
분명히 해두는데, 나는 우리의 큰 뇌에 이점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고층빌딩을 건설하고 프렌치프라이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들은 우리의 뇌가 단지 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
•
자연선택은 우리를 향해 진행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특정 환경에서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도록 돕는 특정 적응력을 갖춘 흥미로운 동물 한 종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동물들이 인간보다 열등한 것은 아니다. 동물들은 각자 독특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주변 환경에 적응한다. 당신의 뇌는 쥐나 도마뱀의 뇌보다 더 진화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르게 진화한 것이다.
•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처럼 전쟁터에서 나와 안전한 환경으로 복귀했는데도 뇌가 거짓경보를 계속해서 울린다면? 이 경우마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잦은 인출로 인해 당신의 신체예산이 소모된다 하더라도 뇌는 현재 존재한다고 믿는 위협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하고 있다. 문제는 당신 뇌의 믿음이다.
◦
믿음은 새로운 환경에 잘 맞추지 못한다. 당신의 뇌가 아직 조정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정신질환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합리적 신체예산 운용이 될 수 있는 한편으로 눈앞의 환경이나 다른 사람들의 욕구 또는 향후 자신의 최선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
따라서 합리적 행동이란 주어진 상황에서 신체예산을 잘 투자하는 것을 뜻한다.
◦
운동을 격렬히 하면 혈류에 코르티솔이 다량 흘러들어오면서 불쾌함을 느낄 수 있지만 미래 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합리적이라 여긴다.
◦
동료로부터 비판을 받을 때 급증하는 코르티솔도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코르티솔이 더 많은 포도당을 만들어내어 당신이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
이런 생각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 사회의 온갖 신성한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
예컨대 법률 분야를 살펴보자. 변호사는 자기 고객이 흥분해서 이성이 감정에 압도당해 괴로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를 전적으로 비난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괴로움을 느꼈다고 해서 그것이 비이성적이 되었다거나 이른바 감정적 뇌가 이성적 뇌를 장악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
오히려 괴로움은 당신의 뇌 전체가 예상되는 보상을 위해 자원을 소비하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
당신의 뇌는 세 개가 아니라 하나다. 플라톤이 말한 내면의 전투를 넘어 나아가려면 우리는 합리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심지어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