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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커뮤니케이션 도구일 뿐 생각의 한계가 아니다

1.

CMYK 컬러를 구성하는 Cyan(시안)이라는 색상(아래 좌측)은 밝은 파랑으로 RGB의 파란색(아래 우측)과는 색상이 다르다.
나는 CMYK 색상 계열의 정확한 의미를 20대 중반이 넘어서야 알았기 때문에, 그 전까지 CMKY는 파랑-빨강-노랑-검정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CMYK의 Cyan과 RGB의 파란색을 같이 놓고 비교해다면 그 두 색이 같은 색이 아님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색상을 구별하는데 문제가 없는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나처럼 Cyan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하더라도 Cyan과 Blue를 구분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Cyan이라는 색상 명칭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Cyan을 ‘밝은 파랑’ 정도로 구분할 것이다.
우리는 대상을 지칭하는 언어가 없어도 그것을 분명히 구별해 낼 수 있다. 그저 자주 사용하는 대상에 필요에 의해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장미는 이름이 장미가 아니더라도 향기롭기는 매한가지인 것이다’

2.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도구 중에 망치는 무언가를 박는 용도로 사용하고, 톱이라는 도구는 무언가를 써는데 사용한다. 망치로는 톱처럼 썰기 어렵고, 톱은 망치처럼 박기 어렵다. 이것은 해당 도구가 가진 한계 영역이다.
하지만 우리는 톱을 가졌다고 무언가를 박을 수 있는 행동을 못하지 않는다. 망치를 구해오거나 망치와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른 도구 –정 안되면 돌을 사용해도 된다– 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가진 도구는 한계를 가지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도구의 한계에 그치지 않는다.

3.

언어라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발전 시킨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살면서 다른 사람과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예컨대 바디 랭귀지를 사용할 수도 있고, 때로는 눈빛만으로도 의미 전달이 가능하다
또한 누구나 때때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언어로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경험을 해 봤을 것이다. 당장 동물의 울음 소리를 텍스트화 하라고 하면 정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우리는 강아지와 고양이의 울음 소리를 분명히 구분해 낼 수 있고 음성으로 흉내도 낼 수 있다.
언어는 그저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의 생각의 한계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기억에 대해서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서술 기억에 대비해 암묵 기억이라고 하고, 지식에 대해서는 문서화 가능한 형식지에 대비해 암묵지라고 한다– 생각할 수 있다. 다만 내가 가진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뿐이다. –영어가 익숙한 사람이 한국말 하다가 적절한 표현을 떠올리지 못해 영어가 튀어 나오는 것이 그 예다

결론

우리가 가진 생각의 한계는 언어가 결정하지 않는다. 언어는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생각의 한계를 언어가 결정한다는 말은, 나에게는 긍정적인 말을 쓰면 긍정적인 생각이 떠오른다는 말과 같은 말로 느껴진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망치라는 도구를 아무리 써도 내 근육만 단련될 뿐, 내 팔이 망치와 결합되거나 망치화(化)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내 생각의 한계는 언어가 아니라 내 유전자와 내가 살아온 환경과의 상호작용(곱)에 의해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