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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인류 문명의 발달 속도 차이는 왜 생겼는가에 대한 설명을 하는 책으로 저자의 생태지리학, 생태학, 유전학, 병리학, 문화인류학, 언어학 등의 해박한 지식을 이용하여 매우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하고 있다.
쉽게 요약하자면 인류 문명의 발달 차이는 농경 생활을 얼마나 빠르게 시작했느냐에 달려있는데, 그 농경 생활을 다른 문명에 비해 먼저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환경적인 요인에 기인하는 것이다라는 것.
그 주장에 대한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대단히 다양한 분야 –생태지리학에서 언어학에 이르기까지– 의 지식을 동원하여 다양하고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전개하는데, 이론 전개 하는 방식이나 느낌이 흡사 <종의 기원>을 읽는 듯 했다. 그만큼 훌륭하다는 뜻.
책의 내용에 대해 환경결정론이다며 비판하는 사람도 있던데, 환경과 기질에 대한 논란은 시공간의 스케일에 따른 것 –시간이 길어질수록, 공간이 커질수록 환경의 영향이 커지며, 그 반대면 기질의 영향이 크다–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좀 다른 입장을 취한다.
수십 ~ 수백 년 정도의 시간이라면 어떤 천재의 영향력에 의해 집단의 발전이 촉진 될 수 있겠지만 책에서 다뤄지는 수천 ~ 수만 년 정도 되는 기간이라면 특정한 개인의 영향력 보다는 그 기간 동안 집단 전체에 누적된 차이 더 영향력을 발휘할 것인데, 그 집단에 누적된 차이는 환경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는 이야기.
책에 대해 또 비판이 제기될 법한 흥미로운 주제는 '왜 중국이 유럽에 뒤쳐졌는가' 하는 부분인데 책에는 별다른 설명이 나오지 않지만 인도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만하다.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면 농경생활을 먼저 시작한 중국이나 인도가 서구 열강에게 따라잡히는 일은 없었어야 할 법한데 –실제로 산업혁명 전까지는 중국과 인도가 유럽에 비해 앞서 있었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 이유에 대한 책의 설명이 좀 부족하다고 느껴졌음.
아무래도 책에서 사용되는 지식 –생태지리학에서 언어학까지– 은 아무래도 시간 스케일이 큰 범위에서 사용되는 지식인지라 근 500년 간의 정치 지형 변화에는 보다 현대화된 정치적, 경제적인 이론 설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기는 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 책에서 사용하는 보다 큰 시간 스케일을 기준으로 보면 근 500년의 정치 지형 변화는 일시적인 모습이며 장기적으로는 결국 중국과 인도가 유럽을 –물론 유럽이 로마시대 때 처럼 통일되어 지속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앞서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