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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게이머, 플레이

개인적으로 별로 탐탁지 않게 여겨지는 말이 '게임 산업이 수출로 돈 잘 벌어 오는데 왜 이렇게 탄압하느냐' 입니다. 게임의 산업적 가능성을 강조하려는 것은 알겠으나, 돈을 잘 벌어 오니 육성 시켜야 한다는 말은 도박이나 마약 사업이 돈 잘 벌어오면 육성하자는 말과 다를바 없이 들립니다. 업계 종사자로서 게임의 산업적 가치를 낮게 보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게임을 하나의 문화로서 위치 시키기 위해서는 비단 정부의 역할 뿐만 아니라 산업계나 학계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산업계에서 수익을 기대하지 않고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단순히 '돈만 벌면 됐지' 하는 생각을 넘어 게임을 문화적인 면에서 이해하여 전파하고 업계의 사회적 책임이 뒤따라야 '게임은 공부에 방해되는 것', '게임 중독은 마약 중독과 같다'와 같은 잘못된 인식과 그 인식을 이용하여 표를 구하려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바로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요즘 시대에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고 공부에 방해된다거나 마약 중독 하는 이야기는 없죠. 오래 전엔 소설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게임에 대한 문화적 접근이 지속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내에 근 1-2년간 게임의 긍정적인 면이나 문화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다양한 책들이 번역되어 출간되었고 –번역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 볼 때 외국에선 꽤 오래 전부터 이러한 담론이 있어 왔으리라 생각됩니다.– 여러 곳에서 다양한 컨퍼런스나 포럼들이 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이 지속되어 게임에 대해 좀 더 나은 인식이 자리 잡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을 쓰다보니 책과는 관계 없는 얘기만 잔뜩 썼군요. 이 책이 게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접근한 내용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잡설이 길었습니다.
게임을 연구하는 분들 사이에는 '연구를 하는 사람은 게임을 할 시간이 없고, 게임을 하는 사람은 연구를 할 시간이 없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는 걸로 압니다. 그만큼 게임과 연구를 병행하기 어렵다는 뜻이죠.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저자인 이상우 선생님은 게임의 경험과 연구의 경험을 고루 갖춘 분으로서 게임과 연구 사이에 균형을 잡는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이 분의 글을 읽으면 게임을 너무 문학적으로만 보거나 너무 기술적이나 산업적으로만 보지 않고 게임 문화를 그 자체로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책 이야기를 하자면 이 책은 1,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에선 게임 장르의 발전을 그 맥락을 짚어가며 이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슈팅게임이 어떠한 결과로 어떻게 발전했으며, 어드벤처 게임은 어떻게 발전 했고, RPG는 어떻게 발전했고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역사를 이해할 때 단순히 사건만 보아서는 올바른 역사를 이해할 수 없기에 –1950년에 6.25가 발발 했다는 것만으로는 제대로된 역사 이해가 안 되는 것이죠– 그 맥락을 함께 봐야 하는데 –오히려 단순히 연도에 사건만 암기하는 것보다는 맥락을 함께 보는게 이해가 더 쉽습니다.– 이 책의 장르별 발전사는 그러한 맥락을 잘 짚고 있기 때문에 이해도 잘 되고 재미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게임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부에서는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게임을 바라보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게임에서 표현되는 시간이나 공간, 기억에 대한 인문학적인 해석을 시도하고 게임 속의 시간과 자본의 관계, SNG의 형태에 대한 사회문화적인 바라보기, 시적 게임의 가능성과 문화적 실천으로서의 게임하기에 대한 논의를 다루고 있습니다.개인적으로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기 때문에, 쉽고 재미있었던 1부 보다는 2부의 내용이 다소 어렵게 느껴졌지만, 게임을 다른 문화의 관점이 아닌 게임의 관점으로서 해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마도 저자 분이 게임의 경험과 인문학인 경험을 모두 갖추었기 때문이라 생각 됩니다.
게임을 문화로서 인정하고 자리매김 하는데는 단순히 좋은 게임을 만들기만 해서는 부족하고 이 책과 같은 게임의 문화적 이해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지속 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때문에 이러한 책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다고 생각됩니다. 책 자체도 재미있고 잘 쓰여졌으므로 이러한 내용에 관심 있으시다면 한 번쯤 읽어 볼 만한 책이라 생각됩니다.